사회적 약자인 을(乙)을 지키겠다며 출범한 민주당 의원 모임 ‘을지로위원회’가 실제로는 ‘갑(甲) 중의 갑’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소 협력업체나 가맹점주를 대변해 불공정 거래관행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을 찾아가 계약서 등 서류를 내놓으라고 하고 응하지 않으면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에 불러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게 대표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이미 과징금을 부과받은 업체에 제멋대로 추가 보상이나 양보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소송 중인 기업에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넣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로 어처구니 없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은 헌법에 의해 엄연히 분리돼 있다. 그런데 을지로위원회는 삼권분립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사법과 행정의 영역까지 엿장수 마음대로 식이다. 법원 영장도 없이 회사 기밀자료를 요구하고 행정부처도 아니면서 제멋대로 보상이나 시정을 강요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삼심제도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을지로위원회가 이 같은 초법적 권한을 휘두른다는 말인가.

물론 현장에서 업계 의견을 듣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는 관련법의 제·개정과 같은 고유의 입법절차를 통해서 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직접 기업에 대고 이래라저래라 하며 윽박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월권이요 위법행위이며 국회 독재다. 공정위의 역할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어 자신들이 나섰다는 게 을지로위원회의 항변이지만 어불성설이다. 공정위가 제대로 일을 못한다면 국정감사 등을 통해 따지고 필요하면 관련 제도를 개선하면 그만이다. 그 누구도 을지로위원회에 행정부나 사법부를 대리할 권능을 준 적이 없다.

국회가 쏟아내는 온갖 반시장, 반기업적 법만으로도 기업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현장까지 찾아와 슈퍼 갑 노릇을 하려는 을지로위원회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