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일이 끝내 벌어지고 말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애플의 상용특허 두 건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구형 스마트폰의 미국 내 판매와 수입을 금지토록 한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정을 그대로 수용했다. 앞서 ITC가 삼성전자 표준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했던 오바마 대통령이다. 누가 봐도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조치다. 당장 노골적인 애플 편들기, 자국 업체를 감싸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물론 삼성전자는 ITC에 대한 항고 등 모든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너무도 실망스럽다. 오바마 대통령을 대리한 미 무역대표부(USTR)의 발표만 봐도 그렇다. 상용특허와 표준특허가 다르다는 것이지만 궁색한 주장이다. 삼성전자가 침해했다는 애플의 사용자 환경 관련 특허는 다름 아닌 미 특허청에서 이미 무효라고 예비판정을 내린 상태다. 더욱이 USTR은 이번 수용 배경에 대해 “미 소비자와 시장 경쟁 구도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월 애플 손을 들어줬을 때와 똑같은 설명이다. 같은 논리가 귀걸이도 되고, 코걸이도 된다. 미국 유력 언론들도 비판적이다. 비즈니스위크는 “백악관은 애플에 줬던 혜택을 삼성에는 주지 않았다”며 “한국은 미국 정부가 편들기를 한다는 또 다른 증거로 인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수입금지 조치를 수용함으로써 삼성전자에 또다시 한 방을 먹인 셈이 됐다”고 꼬집었다. 삼성전자의 반발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세계의 규칙 제정자를 자처하는 미국이 이중잣대를 휘두르며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공정성을 상실한 특허권 보호론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자국 이기주의일 뿐이다. 이번에는 삼성전자지만, 다음에는 어떤 기업이 타깃이 될지 모른다.

경쟁과 혁신, 보편가치를 강조하던 미국의 정신이 사라지고 체면은 추락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포퓰리즘을 넘어 이제 국수주의로 치달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