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을 끈 키코(환헤지 통화옵션 상품)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어제 수산중공업 세신정밀 등이 제기한 4건의 키코소송에 대해 사건별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 키코에 가입한 기업, 상품을 판매한 은행 중 어느 한쪽의 일방적 손을 들어준 게 아니라 사안별로 승·패소를 달리한 것이다. 대법원은 키코소송 심리 판단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키코는 무조건 무효이며 취소할 수 있다”는 기업 측 주장은 인정하지 않으며 환헤지가 필요 없는데도 이를 권유했거나 설명의무를 위반한 은행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기업이 키코의 위험을 알면서도 환투기 목적에서 계약한 경우 은행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키코 사건은 매우 전문적인데다 사안별로 모두 사정이 달라 한 가지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대법원이 일방적 판단 대신 사례별 유형별로 기준을 만들고 그에 입각해 판결을 내린 것은 그런 점에서 일응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차후 판결과 관련, 대법원이 재고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우선 키코 자체는 환헤지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환헤지란 일정 비용만 내면 환율이 어떻게 변하든 당초 예상한 금액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원금의 몇 배를 손해 볼 수 있게 설계된 고위험 투기상품이다. 손익구조가 옵션양매도와 유사하다. 그런데도 환헤지 상품으로 본 것은 문제다. 은행이 옵션의 이론가 등을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의 입장도 정보비대칭과 소비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재고돼야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세계적 대세다. 영국 홍콩 등 금융선진국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로 불완전판매 여부를 판단한다. 내년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출범하지만 이는 그간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가 적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금융상품은 앞으로 더욱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감독당국은 물론 법원도 보다 높은 전문성을 갖추고 소비자 보호에 더욱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는 소비자 보호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의 건전한 육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