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중소기업 부당단가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가 총출동해 앞으로 중점감시 업종을 정하고 납품단가 산정의 전 과정을 전자시스템(ERP)으로 남기는 한편, 부당한 단가인하에 개입한 최고경영자(CEO)를 형사고발하는 등 제재도 강화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지난 4월 논란 속에 국회가 부당한 납품가격 내리기, 발주 취소, 반품 피해액에 대해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토록 하도급법을 개정한 데 이어 나온 행정부 차원의 소위 경제민주화 조치다. 이날 발표된 대책을 보면 정부는 대기업들의 납품단가 내리기를 마치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제품과 서비스의 원가를 낮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기업의 본령이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덜 들여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게 기업 발전이고 혁신이다. 그렇게 해서 소비자들도 더 큰 혜택을 갖게 된다. 모든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보다 싼 가격의 조달처를 모색한다. 원청업체와 1차 협력업체는 물론 1차에서 2차, 3차로 이어지는 기업 간 거래와 산업 생태계는 그 자체가 시장이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가격이 어떤 수준이든, 그것은 모두 시장 메커니즘의 결과일 뿐이다.

정부는 이번에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예방하겠다며 시장에 직접 개입해 ‘부당’ 여부를 판단하고 잘못이 있으면 응징하겠다고 한다. 더욱이 입찰에서부터 납품가 결정, 변경 요구, 협상과 합의, 계약이행 과정까지 협력사와의 거래내역을 ERP 등으로 보관토록 하겠다고 강조한다. 영업 비밀까지 모두 내놓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렇게 대기업을 옥죄다 납품처를 아예 해외로 돌리기라도 한다면 정작 보호해주겠다는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되겠나.

정부가 말하는 ‘부당 단가’는 더욱 문제다. 정부는 올 하반기 중 하도급법에 ‘부당특약’ 금지규정을 담고 그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부당 단가’를 판정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준을 만든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에 대해 높다거나 낮다거나 하는 평가를 누구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가격결정 과정의 문제라면 현행 하도급법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을을 지키겠다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판이다. 정부 개입은 시장을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