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에 대한 51개 품목 판매제한 계획을 서울시가 결국 접는 모양이다. 모든 기존 점포에 일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규 점포를 내거나 영업을 확장할 경우에, 그것도 주변 동네상권과 분쟁이 생길 경우에 판매제한을 권고하겠다며 물러선 것이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업체와 농민, 소비자들이 반발하자 결국 구실과 조건을 만들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서울시가 책임 회피에 급급한 것은 더욱 구차하다. 담당 실장은 당초 판매제한은 외부용역 결과였을 뿐인데, 서울시가 모든 대형마트에 적용하려는 것처럼 비쳐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중소기업학회에 용역을 줬던 것도, 그 용역 결과를 시끌벅적하게 발표했던 것도 바로 서울시였다. 왼손이 했지, 오른손이 한 게 아니니 잘못이 없다는 투다. 지난달 박원순 시장이 용역 결과를 발표했던 것일 뿐이지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고 미리 퇴로를 텄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교묘한 어법이다. 덕수궁 대한문 불법 농성천막 철거도 그렇다. 박 시장이 페이스북에 중구가 천막을 철거한 자리에 꽃을 심은 것을 비꼬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글을 올려 비판이 쏟아진다. 중구청장에게 도로 관리 권한을 위임한 사람이 바로 서울시장이다. 그런 시장은 그동안 철거 반대만 주장했을 뿐 시민들의 불편과 법치의 유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서울시가 돌고돌아 한강 새빛둥둥섬을 문화·관광 인프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아까운 2년을 날렸던 것도 박 시장의 책임이다.

잘되면 내 공이고, 말썽이 있다 싶으면 남 탓으로 돌리고 보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 정치권이 돌아가는 모양새와 똑같다. 박 시장은 바로 자신이야말로 논평가가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는 시장이라는 사실을 언제쯤 받아들일 것인가. 빙빙 돌려서 말하고, 내가 아니라 나의 주먹이 한 일이라는 식의 논법을 구사한다면 더 이상 책임있는 시장이 아니다. 시장은 시정을 책임지는 사람이지 시정에 논평을 내는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