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사회 통합적 지도력이 필요하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는 현대의 모든 나라가 추구하는 양대 국가적 목표다. 보수적 시각은 경제성장으로 실력을 먼저 기른 다음 맞춤형 복지를 확충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비해 진보적 견해는 사회복지 확충 자체가 성장의 토대를 강화하므로 두 가지를 함께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우리의 경우 이 작은 차이가 지난날 반독재 투쟁과 맞물리면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서로 극도로 반목한 원인이 됐다.

여야는 지난 대선에서 다같이 사회복지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보수 진영조차 우리가 이제는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대 강화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본 것이다. 공약에서 큰 차이가 없다보니 선거전 주제는 자연히 후보 신상으로 옮겨졌고, 안보의식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쟁점으로 부각됐다.

박정희는 경제 도약의 공로와 정치적 독재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딸 박근혜 후보가 사회복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 박정희의 공이 과를 덮는다고 판정하면서 사회복지 확충의 요구를 표출한 셈이다. 새 정부가 견실한 성장을 유지하면서 복지국가 건설에 성공한다면 부녀 합작으로 성장과 복지의 국가적 목표를 모두 이루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런데 경제성장도 어렵지만 복지국가 건설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세기 후반의 유럽 복지국가들은 하나같이 복지병의 몸살을 앓았다. 우리는 산업화에서는 선진국을 거의 따라잡았지만 사회복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선진국들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

사회복지는 본질적으로 사회 구성원 간 소득의 재분배다. 일부가 부담하는 비용으로 다른 일부가 혜택을 누리므로 갈등 요인이 항상 잠복해 있다. 실제로 수혜 집단의 도덕적 해이는 복지병을 불렀고 비용부담 집단에 저항의 빌미를 제공했다. 나라별 차이는 있으나 밀고 당기는 가운데 복지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좀 더 통제하도록 개선되어 오고 있다. 사회복지제도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가운데 합당한 복지혜택·비용부담 구조로 진화해 나간다.

‘따라잡기’식 고도성장에는 강력한 권위주의적 지도력이 효과적이지만 사회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정치과정은 그렇지 않다. 전 국민이 참여해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대다수가 수긍하는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한 복지체제는 유지될 수 없는데 오직 통합적이고 포용적인 지도력만이 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대선 결과가 보여주듯이 여야의 지지세는 팽팽하다. 일부 극렬파들은 새 정부의 무력화를 겨냥해 광우병 파동 같은 사태를 획책할 것이다. 임기 5년은 자칫 정쟁의 덫에 빠지면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는 짧은 기간이다. 이렇게 살벌한 정국이지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회복지 확충에 딴지 걸기는 어렵다. 마침 복지문제는 야당도 동의하므로 잘하면 공조 가능성도 크다. 새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자세로 복지정책을 펼친다면 누구도 함부로 트집잡지 못할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복지국가 건설의 공로를 새 정부가 독점하고 싶은 유혹이다. 선거 공약의 세부적 실천에 너무 집착하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공약의 기조를 유지하는 틀 안에서 사회 각계의 의견을 포용하고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 오히려 성공하는 길이다.

국민은 사회복지의 확충을 요구하는 만큼 그에 따른 추가비용 부담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다. 증세 없는 공약실천이라는 약속에 너무 집착할 일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사회복지 시행에 필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 형성이다. 내세운 공약 이행에만 집착하면 불필요한 트집을 유발해 큰 목표를 그르친다.

박근혜 당선인은 누차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극적 목표는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대선 직후 야권의 한 원로는 새누리당이 복지국가 건설을 공약하고 당선했다니 기가찰 노릇이라고 탄식했다. 이처럼 불신의 골은 깊다. 새 정부가 통합적 지도력으로 반대세력까지 끌어들여 복지국가 건설에 성공한다면 성장과 복지를 두고 국력을 소모하던 극한 대결의 정치적 고질도 해소될 것이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