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진정성을 중시하고 국민대통합, 국민행복, 희망찬 미래를 제시하는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더 없이 크다. 나라가 잘되고 국민의 삶이 나아질 것 같은 느낌에 국민정서도 긍정적인 듯하다. 대통령 취임 후 1년도 채 안 돼 “잘 못 찍은 내 손가락 잘라버리겠다”는 아우성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벌써 인사를 놓고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아간다. ‘인사가 만사’라고 어느 대통령이 선언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수차례 시행착오만 거듭하고 있다. 지역주의 인사, 코드인사, 고소영 인사, 회전문 인사라고 비난받더니 이젠 폐쇄적 인사니 밀봉인사니 하는 지적을 받는다. 어떤 스타일의 인사든 간에 좋은 인재를 등용할 수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못해 나오는 비난이다.

대통령이 가진 가장 큰 권한 중 하나가 인사권이다. 그 막강한 권한으로 좋은 인재를 등용해서 신뢰와 힘을 실어주고 일을 잘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러고 나서 일을 잘 못하면 바꾸면 된다. 대통령 당선 전이라면 충성스런 ‘돌쇠’ 부하를 옆에 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선 후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극도의 비밀을 지키거나 또는 무슨 꼼수를 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불신의 늪에서 믿는 사람만 쓰는 것은 독재자들의 인사방법이다.

대통령이 인사를 잘 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주변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지금까지 인사위원회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논공행상이나 대통령 의중을 반영하는 협의체적 성격에 불과했다. 인사담당 조직이 파워게임으로부터 독립돼야 하고 공정하게 운영돼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외부 인사전문가들의 공정하고 소신 있는 조력을 구해야 한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능력과 자질을 바탕으로 한 적재적소 인사를 못하고, 믿을 만한 측근만 고르게 한다면 나중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내공도 없으면서 전문성이 있는 척, 세련된 매너나 그럴듯한 언변으로 포장된 가식적인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 행동자들에게 현혹돼서는 안 된다. 인사권자의 인사방식을 역이용해 줄대기에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자들에게 충성의 빌미를 주어서도 곤란하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한 대통령 당선인의 철학이 인사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크게 실망하리라.

대선 캠프 멤버들에게 전리품 나누어주듯 자리를 제공한다면 그들의 기여를 오히려 폄하하는 셈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 것 자체로 만족해야 소득 3만달러를 향하는 선진국 시민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대통령 만들기에 온몸을 던지고 나서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분들이 존경스럽다. 자리에 연연해 인사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 말고 백의종군으로 국민의 도리를 잘 하는 것이 당선인을 돕는 일일 것이다. 형식적인 탕평인사나 무슨 그럴 듯한 말을 핑계로 당선인 주변 ‘인의 장막’에 의한 인사로 처음부터 일이 꼬이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대통령처럼 임기 초기에 심지어 공기업의 산하기관 임원까지 챙기다 못해 5년 내내 측근 챙기기로 정권 말까지 가는 실책을 할 이유가 없다.

지금 나라가 어떤 처지인가. 일자리, 복지, 안정된 삶 등 행복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고조돼 있다. 경제난국 상황이니 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어찌 한가히 인재등용에 힘겨루기나 하고 내 사람 심기에 혈안이 돼야 하나. ‘인사가 만사’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려면 당선인의 깊은 철학과 함께 결단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첫사랑은 인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인사에 대한 불신 탓에 대통령에 대한 국민신뢰가 추락하고 임기 내내 국론이 분열되고 나아가 국력마저 분산되고 실패한 대통령 하나를 더 낳는 과오가 이젠 없어야 한다.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 정치의 근본이다. 당선인 스스로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해왔다. 더 이상 인사가 망사의 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대선에서 48% 정도를 득표하고도 당선되지 못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48%의 의미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박오수 < 서울대 교수·경영학 ospark@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