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프린터는 국정감사 한 달여 전부터 쉴새없이 종이를 쏟아낸다. 의원 보좌관들이 요청하는 각종 자료를 출력하기 위해서다. 올해도 국회의 ‘선량’들은 국민연금을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자료를 요청했다.

그리고 지난 22일, 의원들은 어김없이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자료들을 발표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민현주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자료는 ‘오보 소동’을 일으켰다. “금융회사에 재취업한 국민연금 퇴직자 중에 향응 수수를 받아 징계를 받았던 인물이 4명이나 된다”며 그 중 한 사람으로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을 지목했다. 하지만 “사장이 국민연금에 근무한 적 없다”는 한투운용의 항의로 오류임이 금세 드러났다.

이목희 민주통합당 의원 자료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 수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사뭇 논쟁적이다. 이 의원은 “(기금운용본부가 투자를 의뢰하면서) 외국계 등 일부 자산운용사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해 유착이나 비리 소지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의 비판대로라면 국민연금은 운용 성과와 관계없이 여러 운용사에 공평하게 기회를 줘야 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운용 수익률이 낮은데도 특정 운용사에 돈을 몰아줬다면 문제지만, 실적에 따라 운용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쏠림현상을 문제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국감의 ‘하이라이트’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였다. 이언주 민주통합당 의원 등은 “재벌 전횡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형 우량주(대기업)의 경영에 간섭했다가 주가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수익률이 왜 저조하냐고 추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380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파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최고경영자(CEO)들도 국민연금 이사장을 면담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다. 그런 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비판은 가을 서릿발처럼 날카로워야 하며, 비판의 목적은 수익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금 고갈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쯤 제대로 된 국정감사를 볼 수 있을지 씁쓸하다.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