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들의 반대에도 연내 입법을 추진해온 근로시간 단축안을 사실상 철회했다고 한다. 관련부처들이 지난 22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근로시간 단축의 입법화를 보류하고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더 수렴키로 했다는 것이다. 당초 고용노동부는 휴일 근로시간을 법정 연장근로시간(주 12시간)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선 법정근로시간(주 40시간)에 연장근로로 12시간까지 추가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지금까지 휴일근무는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휴일 근무를 포함하면 실제 근로시간이 최장 주68시간에 이른다.

국내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연간 211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749시간)보다 360시간 이상 긴 게 사실이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추가적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한다는 고용부의 본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뜩이나 정규직 과보호에다 고용 유연성이 미흡한 상황에서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법으로 강제할 경우 불필요한 노사갈등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현재 기업환경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에는 추가 고용 부담, 근로자들에게는 임금 감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 해고가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에 추가 고용을 압박하면 해외 이전을 부추기는 등 고용을 더 악화시킬 소지도 감안해야 한다.

인간의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고 강제할 경우 또 다른 왜곡을 낳게 마련이다. 특히 선의에 입각한 정책일수록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추가 고용이 이뤄져 좋은 일자리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기 일쑤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부작용을 인정하고 근로시간 단축 카드를 접은 것은 잘한 일이다. 약간의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양날의 칼과 같은 노동문제는 더욱 심사숙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