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쇼잉(showing)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독자신용등급제도’ 도입에 대한 한국기업평가(한기평)의 태도를 둘러싼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이다. 겉으로는 독자 신용등급제 도입에 적극적인 척 하면서도 실제론 실속챙기기에 급급한 한기평의 이중 태도를 빗댄 말이다.

사정은 이렇다. 금융위원회는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독자신용등급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외부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고 개별 회사의 독자적인 사업과 재무능력을 반영한 신용등급을 매기겠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대기업 계열회사에 한정해 독자신용등급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평가대상에 공기업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작년 정부와 공기업을 합친 공공부채는 800조원을 넘어섰다. 최근엔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파산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빚을 내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부도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개발공사도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지방 도시개발공사들의 신용등급은 모두 우량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가능성을 근거로 신용평가회사들이 AA급 이상의 최고등급을 부여한 탓이다. 이를 감안하면 독자 신용등급이 가장 필요한 대상은 공기업이라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중론이다.

신용평가사들도 이런 상황을 감안, 도입 대상을 공기업까지 확대할 것을 금융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당장 도입이 힘들다면, ‘추후 도입 예정’ 등의 표현을 넣어 대상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라도 만들어두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당초엔 한기평도 비슷했다. 한기평은 지난달 말 신용평가사중 유일하게 독자신용등급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제도 도입에 대비해 왔다. 가능한 한 빨리 독자신용등급을 부여하고, 대상도 공기업으로까지 넓히겠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해 왔다.

하지만 금융당국 앞에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공기업 등으로 도입 대상을 확대하자는데 신용평가사 중에서 가장 소극적인 의사를 나타냈다. 평가수수료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기업에 ‘미운 털’이 박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시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척 하고, 뒤로는 실속 챙기기에 바쁜 한기평의 태도를 보면 신용평가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은정 증권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