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처럼 양면성을 가진 것도 드물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묘사된 것처럼 악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사회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꽃이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는가, 즉 소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즐거운 소비를 하나 발견하게 됐는데, 그것은 바로 ‘기부’이다.

미래에셋의 전체 임원은 연봉의 1% 이상을 기부 캠페인 ‘사랑합니다’를 통해 기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장학금과 기부재단 몇 곳에 수입의 15% 정도를 기부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따뜻한 편지를 보내오기도 하고,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이메일을 받기도 한다. 이메일에는 필자가 낸 돈이 아프리카에 있는 한 아이의 식량이 되고, 동네에 우물을 파 주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편지와 이메일에 담긴 글들을 읽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서 뭉클하게 올라오는 작은 기쁨을 느끼곤 한다.

얼마 전 현존하는 최고의 투자가 워런 버핏의 기부서약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전 재산의 99%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기부 서약 사이트 ‘Givingpledge.org’에 올라와 있는 버핏의 글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제가 지금까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점, 운 좋은 유전자와 복리 이자 덕분입니다. 저와 제 자식은 미국에서 백인으로 태어난 ‘자궁 속 복권’의 행운의 당첨자였습니다. (중략) 전투에서 동료의 목숨을 구하면 훈장으로 보상을 받고, 훌륭한 선생님들은 학부모로부터 감사편지를 받는데, 저는 적정가를 벗어난 주식의 가격을 발견한 덕분에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이득을 보는 경제 구조에서 부를 쌓았습니다. (중략)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합니다. 저의 서약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전 재산을 내놓은 세계 최고 갑부의 서약서는 겸손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부는 행운의 결과요, 다른 이들이 각자의 삶에서 노력해 얻은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고백이 담겨 있다.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사회적 기여에 돈을 쓰는 일을 ‘유쾌한 소비’라 칭했다. ‘건강한 경제를 위해서는 잉여자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자선이나 기부가 꼭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기부는 버핏의 표현대로 아주 단순하고 가벼운 소비행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기부라는 소비의 매력은 기부를 받는 사람 못지않게 하는 사람에게도 유쾌함과 즐거움을 준다는 데 있다. 우리 모두 ‘유쾌한 소비’를 통해 자본주의를 더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조웅기 <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cho@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