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金배지 탐내는 노조간부들
노동운동은 정치행위다. 조직을 관리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때로는 정파 간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것까지도 노동운동은 정치행위와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선거철만 되면 정치판에는 노동운동가들이 몰려든다. 정당들도 조직력과 거대 표밭을 갖고 있는 노동단체를 자기편으로 포섭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양대 정당으로부터 당선 가능성 있는 비례대표 또는 지역구 공천을 받을 노조 간부들이 10명에 가까운 것으로 노동계에선 추산한다. 18대 선거에선 한국노총 간부 출신들이 새누리당(한나라당)에서 4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이용득과 이석행 정치 행보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과 정치적 통합을 이뤄 비례대표 2~3석, 지역구 6석 정도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에선 비례대표 1~2석, 지역구 2~4석 공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력 있는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통합 정신이 공천에서 사문화되고 있다”며 민주당과의 정책 연대 파기를 시사했다.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조원 1000명을 이끌고 민주당에 입당해 충성의지를 보여줬다. 그는 지난 1월 민주노총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진보통합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 위원장이 통합을 선언했다가 탈당을 시사한 것이나, 이석행 씨가 노조원들의 입당원서를 몰아 민주당에 들어간 것이나 모양새가 볼썽사납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조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합당을 강행한 이 위원장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정책파괴→민주당과의 통합에 이어 또다시 민주당 탈당이란 압박카드를 들고 나왔다. 노조 리더로서의 모습이나 철학을 찾아보기 어렵고, 오로지 의원배지 다는 데만 정신이 팔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가 깨진 새누리당에는 노동세력 영입이 적은 편이다. 우선 장석춘 전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례대표 앞순위로 검토하고 있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복수노조와 타임오프제 시행을 성사시킨 데 대한 ‘보은 공천’이 되는 셈이다. 유재섭 전 한국노총 부위원장(전 산업인력공단이사장) 등도 비례대표 뒷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바웬사, 룰라, 빔 콕 배워라

외국에선 노총 위원장의 위상이 대단하다. 노조총연맹이 주도하는 길거리 시위나 파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권리보다 책임을 중시하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은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관철시키려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노총 위원장들은 총리급 대우를 받는다. 노동운동가 출신 대통령과 총리도 많다.

조선소 전기공 출신인 레흐 바웬사는 공산주의 체제였던 1980년 폴란드 최초의 자유노조 연대를 결성해 민주화 혁명을 이끌었고, 1990년 초대 직선 대통령에 당선됐다. 철강노조 위원장을 거친 이나시우 룰라는 연방 하원의원에 진출했고 브라질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2003년 취임 이후 재선에 성공했고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브라질 경제를 춤추게 했다.

네덜란드의 빔콕 전 총리는 노총 위원장 시절인 1982년 사용자와 바세나르협약을 맺어 경제를 회생시켰다. 그는 1986년 정치권에도 진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거쳐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총리직을 연임했다. 우리나라 노조 간부들도 정치권에 기웃거리면서 의원 자리를 구걸하기보다 정도를 걸으며 노동운동의 본질을 고민한다면 정당들로부터 의원 영입제의가 저절로 들어올 것이다.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