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천 후유증
‘킹 메이커’로 통하던 허주 김윤환 씨는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공천심사위원장을 지냈다. 다른 심사위원 14명과 함께 서울 올림피아호텔 3층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음식을 시켜먹어가며 공천 신청자들의 정치생명을 재단했다. 그런 허주도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이른바 ‘개혁공천’에 밀려 물갈이됐다. 탈락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낙천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아니 그럴 수 있나”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허주는 이기택·신상우 씨 등 낙천자들과 함께 이를 갈며 민국당을 만들어 선거에 나섰으나 참패했다.

민주당에선 김상현 씨의 낙천이 화제를 뿌렸다. DJ와 수십년간 정치인연을 맺어온데다 당내 영향력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감옥에 가거나 미복권으로 출마하지 못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분을 삭이지 못하고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국회에 들어가겠다”고 벼르다가 2002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정치인들에게 낙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공천탈락이라고 한다.‘공천 원수는 평생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후유증은 크다. 정치 거물들도 일단 낙천되면 재기하는 게 만만치 않고, 그렇다고 당장 은퇴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마땅히 분풀이할 곳도 없다. 그야말로 애매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4·11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민주통합당 공심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당 지도부를 성토하는가 하면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공천에 반발해 사퇴의사를 내비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계파 간 야합’ ‘정치 보복’ ‘학살’ ‘지분 나누기’ 등 원색적 비난이 난무한다. 낙천자들이 뭉쳐 동우회나 무소속 연대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비록 당선되지 못해도 격전지에 출마해 판세를 흔들어 보겠다는 속셈일 게다.

여야는 불과 얼마 전에 당명까지 바꾸고 정치개혁을 다짐했다. 새로운 정치는 당의 이념과 가치를 구현할 일꾼들을 뽑아 변화 의지를 보여주는 공천에서 출발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도 일부 ‘젊은 피’를 수혈하는 이벤트를 벌였을 뿐 구태(舊態)는 반복되고 있다. 벌써부터 이번 총선에서도 기대할 게 별로 없겠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나라 장래를 생각하고 원칙을 지키는 정당이라면 인재는 제 발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정치인들만 그걸 모르는지, 알고도 실천을 못하는지 딱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