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저축은행 피해자만 국민 ?
“내려오면 기사거리 하나 줄게.”

2011년 5월 부산저축은행을 불법 점거한 김옥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과의 첫 통화에서 그는 기사를 ‘흥정’할 정도로 노련함을 보였다. 그는 부산저축은행에 예금을 넣었다가 영업정지로 피해를 본 후 피해자들의 시위를 주도해왔다.

이후 김 위원장을 주축으로 한 비대위는 ‘표’에 약한 정치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5000만원 초과 예금도 물어내라’며 저축은행 피해구제법안을 만들지 않으면 부산에 지역구를 둔 허태열 국회 정무위원장,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 등에 대해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대다수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얘기에만 귀를 기울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허 위원장은 13일엔 ‘저축은행 특별법과 관련한 오해와 해명’이란 자료에서 “예금보험기금이 피해자 보상으로 사용된 부분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정부 재정으로 보충할 계획이기 때문에 예보기금을 납부한 선의의 예금자들의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은행 보험 증권 등 각 권역 금융소비자들이 낸 돈을 저축은행 피해보상에 사용하는 게 문제라는 비판이 일자 내놓은 해명이다.

하지만 정부 재정으로 보충한다는 것은 국민 세금으로 메운다는 의미다.

피해자에 끌려간 것은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금보험공사는 역시 지난해 5월17일 김 위원장을 건조물 침입, 퇴거불응, 업무방해, 절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으나 그 해 9월 이런 조치를 모두 취하했다.

결국 지난 9일 진보적인 시민단체 인사들조차 ‘최악의 입법'이라고 비판한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법안이 정무위를 통과했다. 이날 비대위 카페에는 “허태열, 이진복, 우제창, 이성헌 국회의원 선거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며 “고맙다”는 글이 남겨졌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애통한 심정이야 이해못할 바가 아니다. 비대위가 그동안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울분과 억울함을 대변한 것도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이들만 ‘국민'으로 보는 듯한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5000만원 초과 예금은 보장이 안된다는 법과 원칙을 지킨 말없는 다수 국민만 바보가 되면 어쩌란 말인가.

안대규 경제부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