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디트로이트 모터쇼' 단상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는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메이커의 본거지인 이 곳에서 지난 9일부터 22일까지 2주 동안 모터쇼가 열리고 있다. 1907년 ‘디트로이트 모터쇼’로 시작돼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행사는 1988년 ‘북미 국제오토쇼(North American International Auto Show)’로 격상되면서 매년 가장 먼저 열리고 규모가 큰 모터쇼로 자리잡았다.

이 행사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차의 인기는 ‘2012 북미 올해의 차’로 뽑힌 엘란트라(아반떼) 덕분에 경쟁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거의 모두 언급할 만큼 대단하다. GM의 소형차 개발본부 역할을 맡고 있는 한국GM이 개발한 ‘쉐보레 소닉’도 눈길을 끈다. 한국GM의 아이디어로 스마트폰 화면을 자동차 내부 스크린에 연결해 내비게이션, 음악 검색 및 재생까지 가능케 함으로써 스마트폰 세대의 구미에 맞춰 내놓은 금년 GM의 역작이다.

디트로이트 북미 국제모터쇼에 다녀오면서 30여년간 경제관료로 일한 필자로선 남다른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는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유엔이 정한 빈곤선인 하루 1달러, 1년 365달러를 넘어 선 것은 불과 40년도 채 안된 1973년의 일이다. 그러던 우리나라가 여전히 분배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나 1인당 2만달러, 국내총생산(GDP) 1조달러를 넘어 세계 15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GM 역사 박물관에서 100년 전 순종황제가 수입해서 탔던 GM의 캐딜락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GM의 역점 품목인 ‘쉐보레 소닉’을 개발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우리 부모세대에 대한 고마움이다. 필자는 1960~70년대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던 학과가 공대였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밑거름이 됐다고 믿는다. 당시 인기 학과이던 화학공학과,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원자력공학과, 조선공학과 졸업생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선박,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이 됐다는 것은 확실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결실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할까? 소위 분배 싸움에 지나치게 국력을 낭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제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국민의 역량을 결집하기 어려운 단계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장없는 분배 또한 무의미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같은 해에 치르게 된 금년에는 더욱 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포퓰리즘이 아닐까 한다. 2007년 90만명이 넘던 디트로이트 인구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최근 70만명 수준으로 떨어지고 도심은 공동화돼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해 보았다. 과거 대량 생산 시대에는 암기식 교육으로 붕어빵 같은 우수한 인력을 양산하는 것으로 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수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21세기에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토양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이제 세계 일류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 이런 때일수록 하버드대의 크리스텐슨 교수가 지적했듯이 절대로 자만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는 “한국경제가 잘나가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위기”라고 경고했다. “잘나가는 기업도 한방에 끝장날 수 있다”는 그의 이론은 이미 일본의 도요타나 소니의 쇠락에서 보지 않았는가?

오종남 < 서울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