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믿을 건 기업밖에 없다
영 분위기가 안 살아난다. 송년회 얘기다. 격려나 덕담보다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 때가 때인지라 모임 막바지엔 늘 대화가 정치로 흘러 목소리만 높아진다. 총선·대선을 겨냥한 퍼주기 포퓰리즘에다 집권 말기의 친인척 비리가 여지없이 터지고, 관변 인사는 여전히 뒷말이 무성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그나마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한국은행에 이어 정부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7%로 낮춰 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특히 수출이 잘 안 돼 이번 4분기는 3분기 대비 마이너스가 예상되고 내년 증가율도 한 자릿수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유럽위기 여파가 크다지만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로서 예삿일이 아니다.

'무역의 날' 기념식 안쓰러워

그래서인지 무역 1조달러를 축하하려고 엊그제 무역협회 주관으로 열렸던 ‘무역의 날’ 기념식도 힘이 빠진 느낌이다. 통상 11월30일에 열던 것을 대통령 스케줄에 맞춰 일정을 연기해 치렀던 행사였는 데도 그렇다. 대통령과 만찬을 가졌던 기업인들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기업과 기업인을 궁지로 모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덕담을 나누기가 어색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땅에서 기업하기가 두려울 정도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정치권은 물론 정부까지 기업이 벌어들인 돈과 일감을 뺏으려 드니 그런 것이다. 투자가 늘지 않는 것도, 청년실업이 심각해진 것도 기업 탓으로만 돌린다. 그러면서 가격은 후려치고 세금은 올린다. 반시장 반기업 일색이다. 어제 이익공유제를 강행하려던 동반성장위원회의 꼼수가 실패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경제는 생물이다. 변화에 부단히 적응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래서 코닥이 그렇듯 100년 넘는 기업도 망한다. 미국의 자존심인 GM이나 메릴린치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던 기억도 생생하다.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 도요타는 또 지금 어떤 모습인가.

기업이 달리게 그냥 놔두라

우리 경제와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전경련이 지난해 잘나가는 8대 수출상품의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중국과의 기술격차는 평균 3.9년밖에 안 됐다. 반도체가 4.8년, 자동차가 4.7년이었고 철강 화학 등은 3.3년에 불과했다. 지금 중국은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다. 우리 기업도 가만히 있지 않지만 미구엔 추월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조선은 이미 일부 부문에서 중국에 밀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사상 최대 실적에도 “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온다”고 경고하는 것이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산업이 10년 뒤엔 다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도 다 그런 의미다.

결국 앞으로 뭘 먹고 살 것인지가 당면 과제다. 그 해법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에 있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한다. 세계 아홉 번째 무역 1조달러 달성은 맨손으로 백사장에 조선소를 지은 정주영 회장, 외국 은행들조차 말렸던 반도체 투자에 결단을 내렸던 이병철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도전을 마다않는 DNA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의 발을 묶어버리고 심판이 아닌 선수로 뛰려고 야단이다. 이런 시대착오도 없을 것이다. 기업이 잘 달려야 경제가 산다는 것을 정부만 모르는 것인지. 그렇지만 언제 걱정이 없었던 때가 있었는가. ‘올리고 내리고’, ‘진달래’ 구호를 외치며 원 샷!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