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헛다리 짚은 파생시장 대책
금융당국이 파생시장 개편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주가지수옵션, ELW, ELS, FX마진거래 등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큰 상품을 중심으로 연말까지 개선안을 내놓을 모양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 검토안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파생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주가로 '장난'을 치는 불공정거래다. 대규모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일부 불순세력들이 짧게는 몇 분,길게는 며칠에 걸쳐 특정 주가,내지는 주가지수 자체를 조작하고 그 결과로 부당한 이득을 얻는 행위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은 갑자기 주가지수 선물을 집중적으로 매수 또는 매도해 코스피지수를 단기간 내 급등 · 락시키는 것이다. 옵션이나 ELW에 투자한 개미들의 주머니를 털 때 주로 쓰는 기법이다. 현물 주식을 단기간 내에 대량으로 매수 또는 매도해 주가지수를 급변 시키는 방법도 있다. ELS 주가조작이나 지난해 발생한 '11 · 11 옵션쇼크'가 대표적 사례다.

파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매년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사실상의 주가조작,내지는 코스피지수를 대상으로 한 작전 때문이다. 그런데 당국이 검토 중인 대책에는 이런 불공정거래를 단속하고 금지시키겠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단지 파생시장에서 개인들이 돈을 많이 잃고 있으니 이들이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벽을 높이 쌓겠다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검토 중인 대책들이라는 것도 투자자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주가지수옵션 거래단위를 포인트당 10만원에서 50만원가량으로 높이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옵션의 경우 매수전용계좌가 이미 폐지돼 개인들은 1500만원의 증거금이 있어야 신규로 옵션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 또 다시 포인트당 단위를 5배나 올릴 경우 개인투자자들은 투자를 포기하거나 더 큰 돈을 잃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옵션의 경우 확률상 매도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데 50만원으로 기본단위를 올리면 매도 증거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개인들의 옵션매도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결국 증거금이 없어도 매도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들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된다.

ELW를 거래하는 스캘퍼에 초과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발상도 웃기는 이야기다. 누가 스캘퍼인지 객관적 기준이 없는 데다 단지 거래빈도가 잦다고 더 많은 수수료를 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ELW는 헤지기능도 미미하고 개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불공정 상품인 만큼 개선책을 찾을 게 아니라 없애는 것이 옳다.

이런 어설픈 대책들을 보면 과연 당국이 파생상품과 시장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뿐이다. 단순히 시장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어 투자자를 보호할 요량이라면 파생시장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도 아예 개인은 거래를 못하게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파생시장 수술은 대규모 자금을 동원한 일부 투기꾼들의 시장교란행위와 불공정행위를 근절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1 · 11 옵션쇼크'는 옵션 거래단위가 10만원이어서 생긴 게 아니다. 외국계 투기꾼이 코스피지수를 제멋대로 조작하도록 방치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이 지켜지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데 당국은 지엽말단적인 것만 주물럭거리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