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금융정책은 한마디로 '외자 우대,은행 편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한다는 허울 아래 국내 자본은 손발을 묶고,외자에는 활짝 문을 열었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뉴브리지 칼라일 론스타 등 투기펀드들이 은행을 농단하며 한몫 챙긴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KB · 신한 · 하나금융 등 대형 은행들은 외국인 지분율이 한결같이 60%를 웃도는 결과에 이르렀다. 신규 진입이 막힌 과점시장이어서 땅 짚고 헤엄치듯 이자장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외국인들은 철저히 간파한 결과다.

선진 금융회사가 들어와 달라진 것도 없다. 외국계인 외환 · SC제일 · 한국씨티은행은 7개 시중은행 중 자산규모,수익성 등에서 밑바닥이다. 세 곳의 총자산을 합쳐도 작년 말 252조원으로 국민은행(271조원) 한 곳에도 못친다. 오히려 노조의 기약없는 파업(SC제일),매각 불확실성(외환),모은행 부실(한국씨티)로 인해 은행의 신용 상태만 악화됐다. 주인이 바뀐 지 6~8년이 됐지만 최신 금융기법으로 시장을 선도했다거나 획기적인 신상품을 내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이 같은 정책 실패가 선진금융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와야 한다는 빗나간 모토로 은행을 과보호하고,결국 외자에는 봉이 됐다. 우리금융 매각에 외자와 사모펀드를 배제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것도 정부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결과다. 정부가 편애해온 은행은 역설적으로 국부 유출의 합법적인 통로가 되고 말았다. 외환은행에서 작년 순이익의 68.5%가 배당으로 빠져나간 게 단적인 사례다. 이제 와서 금융당국 수장이 은행에 고율배당을 경고한들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더구나 이는 경영간섭이며 관치금융에 불과하다. 구조를 잘못 만들어 놓고 그 결과를 우려하는 어리석은 행위다.

동북아 금융중심지로 만든다던 서울과 부산에서 글로벌 금융회사를 유치한 실적이 전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진 금융회사에 한국은 로컬시장이지 글로벌 네트워크의 출발지가 아니다. 아무도 책임 안지는 오류 투성이의 금융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