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일하면서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건설회사 K사의 국제상사중재 사건을 대리한 적이 있었다. 네덜란드 회사가 사우디아라비아 병원 신축공사를 수주해 한국의 K사에 하청을 주었다. K사는 지급받은 선급금에서 5%를 사우디아라비아 에이전트에 커미션으로 주었다. 그러다 사정이 바뀌었다. 네덜란드 회사가 공사를 직접 할 속셈으로 K사를 상대로 트집을 잡아 계약 해지와 함께 선수금을 반환하라고 한 것이다.

K사 대리를 함께 맡았던 미국 변호사 브라운는 멋쟁이였다. 카우보이 모자를 즐겨 썼던 그가 심각해졌다. 우리가 제출한 서류 중 가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5% 커미션을 지급했다는 영수증 진본이 없자 다급해진 K사의 직원이 영수증을 만들어 제출했던 것이 들통나게 된 것이다. 브라운은 사임을 해야겠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윤리상 허위문서를 발견했으면 법정에 사실대로 말하던가,사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을 배척하는 철저한 미국의 청교도 윤리였다. 알게 모르게 그것은 지금까지 미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정신이다. 그들 사회에서 작은 일이라도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히면 그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필자도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유학 시절 생활비의 반이 아파트 월세로 나갔다. 쪼들리는 생활이었다. 외국인 신분이지만 다행히 학생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중고차도 사고 아내도 대학원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대출금은 졸업 후 취업한 다음 분할해서 갚으면 되는 것이다. 귀국한 뒤 변호사를 하다가 뉴욕의 콜렉션 에이전트(채권회수 대행회사)로부터 불쾌한 통지를 받았다. 변호사로서 성공을 했는데 어떻게 파렴치하게 빚을 갚지 않느냐는 원색적인 질타였다. 그 편지는 필자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매도했다. 전혀 떼어 먹을 고의가 없었다. 한 번도 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당시 미국 케미컬은행 서울지점으로 가서 예일대학 계좌에 원리금을 냈다. 그러나 은행에서는 외환관리법상 규제 때문에 돈을 받을 수가 없다며 입금을 거절했다. 한국은행의 외화송금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에이전트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돈을 회수할 수 있는지 방법을 물어왔다. 그 회사에 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고 했다. 확정판결이 있으면 한국은행에서 외화송금 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용 없는 거짓말쟁이라는 오해를 풀고 신뢰를 회복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사회나 국가가 일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법정을 가보면 거짓과 위증이 판을 친다. 보통사람들조차 죄의식이 없다. 유리하기만 하면 어떤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등록금을 무조건 내려주고 급식을 무상으로 해 준다는 포퓰리즘도 따지고 보면 거짓말의 한 형태다. 저축은행 사건도 정직해야 할 금융인들이 거짓말을 한 결과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반듯해야 우리는 일류가 될 수 있다.

신영무 < 대한변호사협회장 ymshin@shink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