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는 터질 것이 터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주주의 불법 · 편법 대출과 사금고화, 그리고 이를 싸고 돌았던 거미줄 같은 로비망에 포획된 정 · 관계의 비호가 이토록 오랫동안 통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지금 MB정부까지 1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정치권과 지방 토호세력 간의 끈끈한 결탁을 빼놓고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가 정치권을 향하게 된 것은 사필귀정이다. 저축은행이 정상으로 복원될지 여부는 중수부가 뿌리깊은 비리의 커넥션을 얼마나 캐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중수부로서는 이번 수사를 통해 존속할 필요성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부산저축은행 문제가 불거진 것이 두 달도 훨씬 더 된 일이고 보면 수사의 진도가 결코 빠르다고 볼 수 없다. 정치권이 중수부 폐지를 담은 사법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수사가 훨씬 빨라질 것이란 얘기가 농담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판에 정치권은 국민의 싸늘한 시선을 외면한 채 무관하다는 듯한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청와대 인사가 관련됐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만 할 뿐 스스로 자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당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야당을 공격하기는커녕 발뺌하듯 입을 다물고 뒤로 숨으려고만 든다. 이러니 여야가 저축은행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합의한 것을 놓고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묘한 것은 금융감독원의 변화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감원이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준법검사에 나서면서 금융업체들이 공포에 떨게 된 것이다. "이 참에 걸리면 끝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동안 후하게 검사를 받았던 외국계 금융업체들이 타깃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래서 업체들은 검사받는 한 건 한 건마다 도장을 찍고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금감원의 요구에 꼼짝없이 응하면서도 좌불안석이다. 지하철을 천천히 달리게 하는 노조의 준법운행이 투쟁인 것처럼 금감원의 준법 검사가 투쟁이 되는 꼴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금감원으로선 당연히 억울할 것이다. 검사 업무를 내놓으라는 한국은행과 예금보험공사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말의 오해도 받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갖고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이 결코 책 잡힐 일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각종 규정이 현실적으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까다롭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 같은 규정대로라면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오는 곳이 있겠느냐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준법과 현실 사이의 간격이 크다는 것이 바로 문제다. 그토록 숱하게 로비가 먹히고 부패의 사슬이 형성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감원과 감사원에 대해 저축은행의 로비와 압박이 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중수부이건 금감원이건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이 결코 잘못일 수는 없다. 오히려 진작부터 그렇게 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지금과 같은 궁색한 상황으로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권력을 가진 기관이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에만 연연하다가는 또 다른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자칫 엉뚱한 곳에서 희생양을 만들거나 정치권과의 바꿔치기와 타협을 통해 명분을 구하는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무리를 하면 의심만 사게 되고 정상을 회복하는 시점은 더 멀어지게 될 뿐이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