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빚이 많다는 건 다 안다. 이대로 방치하면 재앙 수준으로 늘어난다는 데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도 처리는 지지부진이다. 이지송 사장이 구원투수로 투입돼 혼신을 다해 뛰는 데도 큰 진전이 없다. 정부는 국회 눈치를 보고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적극 나서지 않는 탓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해결은 더 어려워지고,국민부담은 더 커진다. 그건 빚의 내용을 뜯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빚 규모는 125조4000억원이다. 나라 빚 360조원의 35%나 된다. 이 중 34조7000억원에 대한 이자부담은 없다. 이자를 물어야 하는 빚은 90조7000억원이다. 채권 56조9000억원,국민주택기금 30조원,기타 차입금 3조8000억원 등이다. 이자만 하루 100억원이다.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지난해 계획했던 사업 43조원 가운데 실제 시행한 것은 26조원 정도다. 올해 사업 규모도 30조원으로 확 줄였다. 그나마 17조원을 빌려서 해야 하는 처지다. 11조원은 어떻게 마련한다지만 6조원은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채권을 추가로 발행해 돈을 빌리기도 어렵다. 떼일까봐 투자자들이 잘 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토해양부가 종합지원책이란 걸 지난 16일 내놨다. 요지는 올해 부족한 사업자금 6조원의 조달이다. 주로 시장에서 채권이 팔리도록 도와주겠다는 거다. 대신 직접 지원은 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에 혁신도시 분양대금을 빨리 내도록 하고 정부가 받을 배당금도 면제해줄 방침이다. 보금자리주택으로 민간업체가 중형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모두 자금순환에 임시로 숨통을 터주기 위한 조치들이다. 결국 근본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근본적 문제를 풀려면 크게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임대주택사업 조정이다. LH 임대주택은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장기간 잠기는 게 특징이다. 비용 일부를 국민주택기금에서 보전받지만 실제 건립비용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임대료도 시중 대비 국민임대는 60%,영구임대는 32% 수준이다. 지을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이런 임대주택을 매년 수십만가구씩 쏟아내다 보니 빚이 쌓일 수밖에 없다. LH는 국민주택기금에서 빌린 30조원을 자본금으로 바꿔주길 바라고 있다. 공연히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사실 대안이 없다. LH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몫을 딱 잘라 배정한 뒤 나머지는 나라가 처리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업규모 축소와 시기 조정이다. 전국 414개 지구(사업비 425조원) 중 276개 지구(282조원)에선 토지보상 등이 진행되고 있다. 진행 중인 곳은 사업시기 조정 외엔 손대기 어렵다. 보상에 착수하지 않은 138개 지구(143조원)가 정리대상이다. 그 중 80여곳은 상반기 내에 정리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지구지정 해제 등으로 깔끔하게 처리된 지구는 21곳에 불과하다. 문제는 나머지 60여곳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한데다 당사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방자치단체와 의원들이 개입하면 사태는 더 꼬인다.

LH의 인원을 줄이고,임금을 반납하고,사무용품을 절약하는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총대를 메고 정치권은 협조해야만 풀리게 돼 있다. 임대주택이든 사업구조조정이든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이 민원에 매여 조정안을 틀어버리면 모두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자칫 지자체와 정부,지자체 간 갈등이 생길 우려도 있다. LH는 '정치' 탓에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자체 해결능력은 없다. 이제 정치권이 그것을 풀어줘야 할 차례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