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미국인 친구들을 한국 식당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하곤 한다. 이들은 이제 젓가락도 잘 사용하고,한식을 무척 맛있게 먹을 뿐만 아니라,이 음식들이 건강에도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한다. 지난 주말에 갔던 한국 식당은 손님 중 80% 이상이 외국인이었다. 이렇듯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음식뿐만이 아니다.

이곳 워싱턴에서는 중국계,베트남계는 물론 백인들까지 한국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 중국계 아줌마들은 한국 드라마 클럽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교환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미국뿐 아니라 드라마 한류는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최근 들어 한류에 한국 대중가요(K-POP)가 가세했다. 소녀시대,카라,동방신기 등이 일본에서 최고 순위에 오르고,빅뱅이 미국 아이튠즈 차트에서 톱 10에 올랐다. K-POP 경연대회가 열리는 나라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이들이 K-POP에 빠지는 것은 한류 스타들의 뛰어난 노래실력,완벽한 율동과 춤,그리고 유행을 만드는 능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우리 세대에 어떻게 갑자기 이런 재능이 생긴 것일까? 우리 조상들은 모내기를 끝내는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수십명씩 무리를 지어 사흘 동안 낮과 밤을 쉬지 않고 노래와 춤으로 신명나게 잔치판을 벌이곤 했다고 '삼국지'와 '후한서'가 전할 정도로 음악과 춤을 즐겼다. 엄숙한 불교에도 범패(梵唄)와 화청(和請)이 있을 정도로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조상이었다.

신라 때 박제상이 쓴 '징심록'에 음악과 관련해 '음신지' '가악지'가 있었다는데 전해 내려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징심록 중에서 나의 관심을 크게 끈 것은 '부도지'이다. 많은 민족들이 개국신화는 갖고 있지만 창조 신화를 가진 민족은 유대족과 한민족을 포함해 몇 안 된다. 부도지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팔려(八呂 · 8개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로부터 시작하는데,우리 조상들은 이 창조를 위한 본질인 율려(律呂 · 악기와 조율,혹은 우주의 근본 진리)를 책임졌다고 한다.

소리로 창조가 이뤄졌다는 것은 참으로 과학적이다. 빛을 포함한 모든 물질의 구성은 소리를 구성하는 파장과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시었다'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돼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닌,팔려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창조의 본질인 율려를 책임졌던 우리 조상들은 부도지가 말하는 복본(復本 · 창조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약속)의 뜻으로 했든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노래와 춤을 즐겼다. 자손들인 우리는 그 유전자로 인해 노래와 춤 연기로 세계를 휩쓸고 있고,많은 가정들이 노래방을 갖추고 모일 때마다 노래와 춤을 즐긴다. 앞으로는 한류에 조상들이 맡았던 율려를 찾는 복본의 지혜가 더해져 국격을 더욱 높였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안창호 < 美 렉산제약 회장 ahnch@rexah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