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현대건설을 최종 인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대그룹이 인수가로 제시한 5조5100억원 중 1조2000억원의 출처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돈에 대해 현대그룹은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현대증권 노조 등은 "의심스럽다"는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오락가락하는 외환은행의 태도다.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현대그룹 자금 출처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19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이전에 자금 출처를 조사할 계획은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22일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 다른 채권기관이 "외환은행 주장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반발하자 "23일로 예정돼 있던 MOU 체결 시기를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도 "실무적인 이유로 MOU 체결이 연기됐을 뿐"이라며 "자금출처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외환은행은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대그룹으로부터 어떻게 자금을 조달했는지 소명서를 받은 뒤 MOU를 맺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외환은행이 몸값을 높이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가 논란이 커지자 서둘러 수습책을 들고 나온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현대그룹이 제시한 가격인 5조5100억원에 현대건설을 팔 경우 외환은행은 1조2000억원 정도의 차익을 얻게 된다.

외환은행은 5월에도 현대그룹과 무리하게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으려다 논란을 일으켰다. 그 때도 금융권에서는 "외환은행이 부실 가능성이 있는 대출을 최대한 빨리 정리해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려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매각을 앞둔 은행이 부실 자산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기업이나 금융권에 피해를 주는 방법이라면 곤란하다.

지난 22일 저녁 외환은행 부행장 7명은 하나금융이 아닌 호주 ANZ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냈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임원들조차 은행 일보다는 '새 주인'에 대한 관심이 더 큰 것 같아 씁쓸했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