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만화계에 최초로 등장한 여성 슈퍼히어로 원더우먼(Wonder Woman)을 기억하는가? 나는 원더우먼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그녀를 가장 쿨하고 멋있는 여성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녀의 최강 무기인 '진실의 올가미' 때문이다. 힘을 통한 물리적 강제가 아닌 거짓 없이 진실을 고하게 했던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이 무기는 그야말로 우먼(woman)이었기에 가능했다.

2010년 나는 또 다른 치명적 무기로 무장한 혹은 무장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원더우먼,원더걸(Wonder Girl)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최근 정치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나경원님이 생각하시는 한국에 가장 바람직한 권력구조가 무엇인가요?" "저는 어린시절부터 장애인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중략) 의원님을 직접 뵙고 제가 생각하는 장애인 정책을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

간담회나 학회에서 들은 얘기가 아니다. 내 트위터와 블로그에 남긴 여학생들의 글이다. 나는 아침 회의가 끝나면 습관처럼 각종 이메일과 온라인매체에 올라온 글들을 꼼꼼히 확인한다. 하루 중 이 시간이 꽤 즐겁다. 쏟아지는 메시지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지적 · 정신적 · 사회적으로 단단해지는 여성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논쟁의 중심에 있는 정치적 현안부터 국제적 분쟁까지,높은 수준의 정책적 제언에 놀라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또 한번 놀란다.

나를 흥분시키고 놀라게 하는 이 메시지들은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자아'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있다는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성 정치인이 더 많아져야 하고 또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많이 늘어야 진정한 정치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여성 몫'이 아닌 자력으로 최고위원 자리에 오르겠다고 다짐했고 이뤄냈다. 나는 여성들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스스로를 단련하는 철저한 고민과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는 데에는 우리 여성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0년 9월26일 일본을 상대로 여자축구 선수들이 보여줬던 경기를 생각해보라.기술적 측면이든 환경적 측면이든 한국 여자축구는 일본에 비해 열세였다. 그럼에도 여자축구 선수들은 나쁜 시스템을 탓하는 대신,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경기에 임했다. 여느 10대 아이들처럼 아이돌 그룹 샤이니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들이다.

지소연 선수는 우상이 누구냐는 질문에 "우상은 없다. 내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답했다. 진정한 원더걸이다. 대한민국의 원더우먼과 원더걸은 지금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한다.

나경원 < 한나라당 국회의원 nakw@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