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놀던 아기가 엄마를 찾지만 엄마는 친구와 얘기하느라 정신없다. 눈물을 글썽이던 아기는 "이대론 안돼.뭔가 새로운 게 필요해"라며 벌떡 일어선다. 엄마의 눈은 휘둥그레지고 영상통화로 이를 본 아빠는 환호성을 지른다. 그날 저녁 아기는 중얼거린다. "내일은 뛰어볼까. "

아이는 이렇게 신비한 존재다. 갓 태어나 눈도 못뜨면서 방긋 웃을 때,고운 잇몸에 이가 돋을 때,광고처럼 어느날 혼자 설 때 가슴 가득 차오르는 행복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공부 대신 게임에 매달리고 괜스레 퉁퉁거려도 "엄마 잘못했어요,기운 내세요" 한마디면 세상이 환해진다.

지난해 한국 여성의 평균 초산연령은 30.8세로 나타났다(통계청). 초혼연령이 28.3세인데다 보통 결혼 후 1년은 지나서 아기를 갖겠다고 생각하니 엄마 나이 서른한살은 돼야 첫아기를 낳는 셈이다. 출산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요,아기는 예쁘지만 키우는 건 간단하지 않다.

맞벌이 여성의 경우엔 전쟁이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봐줘도 퇴근시간만 되면 전전긍긍이요,주말엔 꼼짝 못하고 아기와 씨름해야 한다. 몸이 고단한 건 그렇다 치고 회사에서 눈치 보랴,아기에게 미안해 하랴 마음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뿐이랴. 남자의 초혼연령은 31.7세.여자보다 3.4세 위니 서른다섯에 겨우 아빠가 되는데 직장에선 삼팔선사오정이라고 야단이다. 아기가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실직할까 걱정해야 하고 재취업을 해도 중학생이 되기 전에 다시 위기를 맞는다. 이러니 둘째는 꿈도 꾸기 어렵다.

출산이 늦으면 은퇴도 늦어진다. 안그래도 한국 남성은 공식 은퇴 후에도 먹고 살기 위해 11.2년 동안 더 일해야 한다는 마당이다. 게다가 세계보건기구에선 35세 이후 출산을 고령출산으로 정의,산모와 아기 모두에게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최근 4년간 6세 미만 선천성 기형 환자가 연평균 3%씩 늘고,특히 무뇌증같은 신경계통 기형이 급증했다는 발표도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의료계에선 환경 변화와 출산 연령이 높아진 데 주목한다. 초산 연령이 높을수록 선천성 손가락 기형 발생 확률이 높다는 발표도 있다.

결혼과 출산 모두 취업은 힘든데 출산은 신경 쓰이고 양육은 어려우니 도리 없이 미루거나 포기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창출과 출산에 대한 직장 내 인식 변화 없이 출산율(1.19) 제고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