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국세청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한 청장이 차장이던 2007년 초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고가의 그림을 인사청탁성 선물로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한 청장은 지난 연말 경주에서 권력실세의 지인들과 부적절한 골프회동을 가진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불명예 퇴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림 로비설이 불거지고 사의 표명을 하기까지의 이 짧은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본 국민들은 기만당했다는 기분을 떨쳐버리기 힘들 것 같다.

사퇴설이 대세로 굳어진 15일 오후 3시30분께 모 언론사는 '한 청장이 청와대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긴급 보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곧바로 김은혜 부대변인을 통해 이 보도 내용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구두로도 사의 표명을 해오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물론 그 시점까지는 사의 표명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미 한 청장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고 있다고 전해진 마당에 굳이 '부인공시'를 낼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국세청은 한술 더 떠서 국민들을 더 헷갈리게 만들었다. 국세청은 청와대 발표가 나온 직후 '한 청장이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없으며 사의를 표명할 계획도 없다'는 공식 자료를 냈다. 사의 표명을 부인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자료는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판명났다. 국세청은 16일 오전 9시께 "한 청장이 전날 저녁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사의를 표명할 계획도 없다'는 자료를 낸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말이 된다.

이 같은 '말 뒤집기'에 대해 국세청은 "15일 오후 보도가 나왔을 때는 사의 표명을 하지 않았고 이후 청와대가 곧바로 부인을 하고 난 터라 여기에 맞추기 위해 그런 자료를 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궁색한 해명에 고개를 끄떡일 국민들은 많지 않다.

국세청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신뢰를 쌓지 못한 탓이다. 국세청이 최근 일반인들로부터 신뢰도에 대해 100점 만점에 50.3점이라는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을 억울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