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직원들의 사기가 지금처럼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진실은 빨리 밝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정년 퇴임을 앞둔 한 국세청 직원)

한상률 국세청장이 차장이었던 2007년 초 당시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인사청탁을 위해 고가의 그림을 선물로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국세청 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청장이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서긴 했지만 이주성 전군표 등 전직 국세청장들이 비리로 줄줄이 쇠고랑을 찬 '악몽'이 또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 청장은 '섬기는 세정'을 내세우며 역대 어느 청장들보다 국세청의 이미지 개선에 앞장서 왔던 터라 직원들은 일손을 잡지 못하고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세공무원들의 힘을 더 빠지게 만드는 것은 이번 의혹이 인사에 불만을 품은 국세청 내부 직원에 의해 불거진 것이라는 소문이 화랑가 등을 통해 들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체 조직을 위해서라면 다소 억울해도 기꺼이 옷을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세청의 오랜 전통이 여지없이 깨지는 게 된다. 엄정한 업무 처리가 생명인 국세청은 오랫동안 군대처럼 엄격한 내부 규율과 조직에 충성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소문을 전해들은 전 국세청 고위 간부는 "국세청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국세공무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세청은 종합부동산세 환급에 유가환급금 지급 등으로 작년 말부터 이미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본연의 업무인 세금 징수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매일 야근은 기본이고 주말 근무까지 일상화된 국세청 직원들에게 또다시 쏟아지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은 견디기 힘든 고문이 아닐 수 없다.

한 국세청 직원은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도 국세청에 있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봐서 달라진 모습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뺀다"며 "하지만 이런 의혹 사건들이 하나씩 터지면 정말 힘이 빠진다"고 허탈해했다. 전국의 2만여 국세공무원들은 이번 의혹 사건이 빨리 마무리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서욱진 경제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