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유동성 응급조치 했지만 위기원인 남아

'찔끔찔끔' 보다 과감한 선제대응 절실

지난 30년대의 경제대공황 이래 최대의 위기로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의 끝이 어딘지 묘연하다. 지난 14일 주요상업은행의 국유화 및 모든 예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을 주내용으로 하는 G20재무장관회의와 유럽국가들의 적극적인 정책공조가 발표된 뒤,세계증시는 잠시 폭등세를 보였다가 단 하루 뒤인 15일 다시금 최대의 폭락세를 보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가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정책수단을 동원한 상태다. 유럽에서도 각국이 수백억달러씩 구제금융을 쏟아붓고 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최강수의 조치들을 취했음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금융상황에 대해 선진국 정부가 추가로 취할 수 있는 대책은 없어 보인다. 그 여파로 우리 증시도 최대 폭으로 폭락하고,환율도 다시금 폭등했다.

이번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시장에서의 거품붕괴에 따른 유동성위기가 전 세계 금융위기로 확산된 결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붕괴로까지 확산될 위기에 직면해 주요 국가들이 유동성위기 극복을 위한 가장 강도 높은 정책을 취하고 있음에도 금융시장의 공황상태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전 세계 주요정부가 공조에 나선,지급위기에 처한 상업은행의 국유화와 각종 예금에 대한 정부지급보증 등 정책들은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한 응급조치였지,위기의 근본원인은 여전히 방치된 상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번 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투기적 자산시장에서,집단행동전략(Herd Behavior strategy)은 시세차익 극대화를 위한 최선의 투자전략이자 고유한 특성이다. 즉 미국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커지고 있고 또 언젠가는 그 거품이 터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단 1원의 단기적 시세차익 가능성이 있을 경우 다른 투기집단과 같은 방향으로 투자하는 것이 투기적 자산시장에서 이윤극대화를 위한 소위 '합리적 투자'전략이라는 것이다. 투기적 시세차익에 비해 매우 낮은 거래비용에 의해 초래되는 이 같은 투기적 자산시장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금융시장의 공황상태는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선진국 정부들과 함께 투기적 자산거래에 대한 효율적이고 강력한 감독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이다.

둘째,유동성위기는 신용위기,즉 경제심리의 위기이며 이는 얼마나 신뢰가능한 정책신호(Credible signal)를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선진국들의 정책공조 이후 나타나는 국제금융시장의 요동은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기보다는 투기적 자산시장 특유의 조정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선진국의 금융시장 불안정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우리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최근 아시아지역에서의 금융안정을 위해 한·중·일 금융협력체제를 조성하고 또 한·미 통화스와프제도를 구축하고자 했던 정부 의도는 적절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의도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접근방식은 오히려 정반대의 정책신호로 작용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한·중·일 금융협력체제나 한·미 통화스와프제도가 당사국간 합의가 이뤄져 발표될 때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지,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가운데 일방적 희망사항을 미리 공표한 것은 시장에 가장 나쁜 정책신호를 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유동성위기는 섣부른 일방적 언론플레이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주도면밀하게 상대국 정부와 실무적 합의를 도출한 뒤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 시장의 반응은 화상을 입은 어린이와 같다. 화상을 입은 어린이에게 효과를 알 수 없는 치료법을 써보자고 제안하는 우를 다시는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