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으로 키코(KIKO) 가입 기업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가 지난주 키코 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키코는 이미 알려진 대로 환율이 일정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가입한 기업에 수익이 되지만 급등하면 계약금액의 몇 배를 은행 측에 물어줘야하는 통화옵션 상품이다. 정부 대책으로 기업들이 얼마나 구제를 받을지는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손실이 최소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키코와 관련,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점이 있다. 그것은 왜 지난해 키코 계약이 갑자기 급증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중소 수출기업들이 환헤지를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또 한다 하더라도 선물환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선물환보다 사실상 수수료도 비싸고 구조도 복잡한 데다 위험하기까지 한 키코에 500여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이 지난해 집중적으로 가입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일각에서 '키코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측은 지난해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키코 계약을 맺은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 키코는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920~960원에서 움직일 때 집중적으로 체결됐다. 당시는 글로벌 달러 약세가 한창 진행되던 시점으로 환율의 추가 하락이 예상되던 때였다.

음모론은 당시 여러 은행이 동시 다발적으로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키코 영업에 나선 것은 누군가 배후에서 키코 상품을 디자인해 은행들을 통해 조직적으로 판매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환율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판단한 배후 세력은 앞으로 환율이 크게 오를 것으로 보고 은행을 동원,어수룩한 기업들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은행은 중간에서 수수료를 따먹기 위해 '환헤지와 동시에 수익도 얻을 수 있다'는 달콤한 말로 기업들에 키코를 집중적으로 떠 안겼다는 내용이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 가입 기업들은 손실에 울고 있지만 제로섬 게임인 키코의 성격상 최종 계약 상대방인 배후 세력은 이 손실에 상응하는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상당수 은행들은 자신들은 중간에 거간 역할만을 했다며 키코로 큰 돈을 번 주체는 따로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음모론은 그런 배후로 홍콩에 있는 외국계 은행 또는 헤지펀드를 지목하고 있다.

사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특히 배후의 환투기 세력이 최근 NDF(차액결제선물환) 시장을 통해 원·달러 환율급등을 부추기는 투기꾼과 동일 세력이라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증시의 대표적 불공정행위인 '작전'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마침 당국이 서울외환시장과 NDF시장에서 환투기세력 색출에 나선 모양이다. 정부는 혹시라도 중소기업의 고혈을 빨아먹고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투기세력이 없는지 차제에 끝까지 추적해 실체가 있다면 이를 밝혀야 한다. 필요하다면 외환시장에 대한 한시적인 직접 통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일개 환투기꾼에 의해 온 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