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재원이 미국에서 사용하던 차를 국내에 들여와 운전하다 마일로 표시된 속도계를 킬로미터로 착각해 속도위반에 걸린 적이 있다. 측정단위의 국가간 차이로 인한 생활 속의 불편이었던 셈이다. 근세 이전에는 측정단위가 국가마다 다른 것이 보편적이었으며,이는 단순한 생활불편을 넘어 지역간 물류교류나 국제무역에 엄청난 장애요인이었다. 1700년대 프랑스에서만도 길이와 무게를 재는 측정단위가 25만개를 넘었다니 그 심각성은 짐작할 만도 하다. 프랑스 혁명의회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미터법을 만들었고,1875년에는 유럽 및 미국 등이 참여하는 국제조직도 창설됐다. 국제적인 측정단위 통일화 작업은 국제 물류흐름을 촉진하게 함으로써 세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측정단위의 통일화 작업 이후 약 100년이 경과된 1973년에 국가간 자금흐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국가별로 차이가 큰 회계기준을 세계적으로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창설됐다. 미터법이 국제무역 발전에 기여했던 점을 돌이켜보면 국제회계기준 도입이 세계 금융발전에 기여할 역할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외국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들이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회계정보를 공시할 경우 외국투자자들이 회계정보를 더욱 신뢰해 더 많은 투자자금이 유입되고 국가의 투명성 평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대우 등 대형 분식회계사건의 여파에 휩싸여 있던 2001년에 미국의 4대 회계법인인 PwC가 발표한 우리나라 불투명지수는 100점 만점에 73점으로,싱가포르의 29점보다 무려 44점 높게 나타났다. 이후 정부의 제도 개선과 기업의 경영 투명성 제고 노력 덕택에 우리나라의 올해 불투명지수는 31점으로 14점인 싱가포르와 그 격차가 크게 축소됐다.

PwC의 올해 발표자료에서 주목할 점은 국제회계기준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국가가 상당히 투명한 국가로 평가받았다는 점이다.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한 나라의 불투명지수는 5점 정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으며,이는 기업의 자본조달비용을 평균 1% 정도 낮추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는 과거 대형 회계부정사건으로 실추된 회계정보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 회계환경 및 감독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이런 제도개선은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으며,일시적이긴 하지만 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회계정보 생산에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미루거나 소극적 대응에 그칠 경우 그동안의 회계제도개선 노력은 물거품이 되며,국제적 신인도가 저하됨으로써 기업의 해외자본조달비용이 상승하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국제회계기준 도입이 기업가치를 대폭 높일 수 있는 수익성있는 투자라는 점을 인식하고 국제회계기준 의무적용시점인 2011년까지 기다리기보다 오히려 1년이라도 먼저 도입하겠다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상장기업은 당장 2009년부터 의무적용 대상이다.

국제사회는 우리나라가 세계 13위라는 경제규모에 걸맞게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를 생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62개국 중 국제회계기준을 인정하지 않은 국가는 34개국뿐이다. 향후 2~3년내에 국제회계기준을 수용하지 않은 국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회계기준 통일화는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기업들이 인식하고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을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