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100일 계획'으로 김영삼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계한 박재윤 교수가 통상산업부 장관을 맡았을 때였다. 그는 단연 실세였다.

그런데 기자들사이에서 인기는 별로였다.

부처 공무원들도 뒤에서는 '장관님'대신 '박 교수'라고 부르곤 했다.

불만 섞인 지칭이었다. 공직자들에게뿐만아니라 출입기자들에게조차 제자 대하듯 했던 기억이 난다.

기자들과 서먹하고 직원들과도 거리가 있었으니 장관의 '말발'이 서기가 어려웠다.

김대중 정부 출범 때는 김태동 교수 등 중경회 학자들이 중용됐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진념ㆍ강봉균ㆍ이헌재ㆍ이기호씨 등 직업관료들에게 밀렸다.

노무현 정부 때도 처음에는 '지방대와 비주류'교수들이 약진했으나 상당수가 위원회 등지로 떠밀렸다.

관료들의 노회한 현실감각과 부하직원다루기,질긴 생존력을 당해내지 못했던 셈이다.

물론 성공한 '교수장관'의 사례도 적지는 않다.

현 정부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인다.

먼저 청와대에서 류우익ㆍ김중수ㆍ곽승준ㆍ김병국ㆍ박미석 교수가 100여일 만에 물러났다.

그 자리의 상당수가 전현직 차관들로 채워졌다.

말하자면 구원투수로 관료출신들이 기용된 셈이다.

왜 관료들이 구원투수로 중용될까.

교수등용과 반대 논리로 보면 되겠다.

교수들의 기용은 기본적으로 이론과 전문지식 때문이다.

변화와 새로움도 인사요인으로 작용한다.

관변학자와 폴리페서도 적지 않으니 인사권자와 얽히고 설킨 겹겹의 연줄도 현실적인 연결고리다.

교수들의 기용 동기는 물론 좋다.그러나 행정은 간단하지가 않다.

일이 시작되면 크고작은 문제부터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자칫 현실(기존 행정)과 신념(전문 이론)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빗나가고,이념은 공론이 돼 문제점만 드러내기도 십상이다.

촛불시위 국면도 크게 봐서 그런 예다.

당연히 최선은 못해도 우선 최악부터 모면해야 하고,대박 정책은 고사하고 최소한 실패의 부담줄이기를 모색하면서,안정과 내실 쪽으로 국정의 방향이 급속도로 기울어지기 쉽다.

대통령도 현실정치인인 이상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는 데는 어쩔수 없다.

새 정부출범에 따른 기대치는 높기만 한데 명쾌하게 가닥잡히는 것은 없는 상황이 되면 "방향 전환하라""인적 쇄신하라"는 요구는 커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 경험 많은 '관료장관'을 중용하면 일단 정책실패의 리스크는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

정책 성공은 그 다음 얘기다.

언론의 문제 제기,국회의 간섭,시민단체의 시비를 두루 버텨내면서 생긴 요령과 생존철학이 관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씨는 이런 공무원의 성공덕목을 "잘 참는 것,간접화법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렇게 틀 속에 짜여진 공직생활이 도전과 새로움,변화와 같은 가치와는 멀어지게 한다.

내각이 총 사퇴의사를 밝힌 지 보름째,이명박 정부의 첫 개각이 장고형으로 진행 중이다.

때마침 복지ㆍ교육 등 교체 우선순위라는 데 교수장관들이 들어있다.

인사 결과는 청와대처럼 될까.

교수집단에 좀더 기회가 주어질까.

아니면 제3의 길로 정치인과 사회활동가들이 발탁될까.

청와대 개편과 개각은 궤도 점검에 들어간 이명박 정부의 민심읽기와 대응,향후 국정운영의 방식과 지향점을 보여줄 시금석이 될 것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