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너무 단단히 꼬여 있다.

쇠고기를 넘어 정권퇴진운동으로 번진 서울 도심 시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집단최면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것조차 말이 되고,그것이 정당화.일반화되는 오류는 필연이다.

여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무개념이고 매국노이다.

어떤 논리적 합리적 이성적 설명도 통하지 않게 돼 있다.

정권이 출범한 지 겨우 100여일 만에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이 총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무어라고 해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선출된 정권이다.

그런데도 '혁명'을 운운하고 물러나라는 요구는 많이 지나쳤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 꼴인지,다함께 망하자고 작심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다.

결국 '실용'이 문제였다.

민심이반의 불씨가 됐던 '강부자'(강남 땅부자),'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S라인'(서울시) 인사에 대해선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미국 쇠고기에 대한 실용주의도 마찬가지다.

광우병의 존재,그리고 인간광우병의 발생 확률은 '과학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고 국민건강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쇠고기를 주고 FTA(자유무역협정)라는 더 큰 이득을 취하는 게 훨씬 낫지 않나,그런 실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쇠고기 협상은 졸속의 실패작이 됐지만 솔직히 그런 접근 자체를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함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용의 치명적 결함은 명분과 이념의 공격에 한없이 취약하고,철학의 빈곤으로 비춰지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지만,명분과 이념은 쉽게 감성으로 흐른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도 그렇지 국민 목숨이 걸린 문제를 정부가 팽개쳤다? 여기에 반미주의까지 실린 '뇌송송 구멍탁' 한마디에 넘어가는 게 군중이다.

오류는 또 있다.

명분과 이념을 배제하고 효율과 실익을 추구하자는 실용이 오히려 이념화되고 만 것이다.

실용의 틀에서 이념에 매달렸던 지난 참여정부의 노선이 부정된 것까지는 좋았다.

그래서 진보에서 보수로,친노조에서 친기업으로,분배에서 성장으로,규제에서 자율로,큰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친북에서 친미로 돌아섰다.

문제는 그 자체가 좌(左)와 우(右)만 바뀐 이념의 문제로 가장 첨예한 대립과 갈등의 요인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늘의 혼란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실용이 폐기되어야 할 가치는 결코 아니다.

잘못은 이 대통령의 실용 리더십이 태생적인 CEO(최고경영자)의 실용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정의 일방통행이었지,근본적으로 실용의 탓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용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功利)주의에 기반한 철학이라고 본다면,국가운영의 실용은 바로 좌와 우를 넘나들고,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대치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념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대립적 노선과 정책을 선택적으로 섞고 조정.절충.타협.양보.포용하는 데 길이 있다.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적응하는 국정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게 실용의 생명이다.

추창근 논설실장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