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중연 <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 jyhwang@kisa.or.kr >

얼마 전 어느 대학에 갔다가 화장실에 들렀다.대학시절 생각이 났다.그 시절 화장실은 우리들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공간이었다.그 속에는 민주화를 열망하거나 방황하는 외로운 청춘들의 설익은 철학도 있었다.짝사랑 이야기도 자주 등장했다.

30년이 지나 인터넷 시대를 맞은 요즈음 대학 화장실은 사이버 공간으로 흡수돼 버린 듯하다.자기만의 은밀한 공간과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 마음껏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달라진 게 있다.아날로그 세대의 낭만과 여유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공간이 장애로 고통받는 어린이나 암으로 투병 중인 가난한 가장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희망과 사랑의 공간으로 존재하기도 한다.그러나 여러 가지 디지털 그림자에 의해 몸살을 앓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타인에 대한 험담이나 거짓 소문 퍼뜨리기,위협이 난무하거나 근거 없는 이야기가 확산되기도 한다.개인정보 침해와 명예 훼손,사이버 폭력 등 인터넷 공간의 오염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온라인 세상 안에서 소리 없이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 이들을 Q(Quiet) 세대라 했다.시공의 제한 없이 열린 공간에서 누구와도 소통하고 있는 듯하지만,사실 그들은 늘 고독하다.따뜻한 체온이 없는 만남은 공허하기에,아날로그식 만남이 결여된 Q세대들은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현실에서 소외되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눈을 마주치고 악수하거나 포옹하면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때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낀다.우리 인간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에 의해 닫히기보다는 세상과의 건전한 소통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느껴야 한다.

오염된 정보가 넘쳐나는 사이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유독 가스와 매연이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인터넷은 우리가 누려야 할 제2의 공간인 만큼 우리 스스로 자정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인간성 상실 등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

편지나 엽서 한 통,떨어지는 낙엽과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에 감동의 전율을 느끼던 시대가 있었다.그 전율은 우리의 정서를 순화해 주었다.

인터넷에 몰입하고 갇혀 버린 Q세대들 역시 이러한 감동의 전율과 낭만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따뜻한 디지털 세상,이러한 세상에 나의 주파수를 맞춰 보고 싶다.디지털 세상에 아날로그의 낭만과 전율이 흐르는 사이버 공간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