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洋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경제정책 >

바다이야기 등으로 온통 어수선한 가운데 며칠 전 정부에서는 '비전 2030'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이런저런 정책들을 추진하면 2030년에는 소득 수준과 삶의 질 등 복지 수준이 선진국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에 이른다는 야심찬 내용들이다.

그러나 주요 언론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소 냉담했고 막대한 재원 마련 방안이 빠져 있어 실현 가능성을 의심 받고 있다.

정부가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앞날을 내다보면서 바람직한 지향점을 제시하고,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챙겨보는 것은 결코 냉소를 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계획이 올바른 상황 인식 하에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필요성과 방향에 따라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목표와 방안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비전 2030'은 실효성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호응과 동참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우선 과거와는 크게 다른 정책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 80년대 이전에는 국가 재원(財源)의 대부분을 정부가 배분할 수 있었고,이를 이용해 정부 주도의 각종 발전계획을 실효성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간 부문의 확대와 국제화 등으로 정부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크게 한정돼 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국가예산 규모는 매우 작고,인건비 등 경상적 경비를 제하면 사업성 경비는 얼마 되지 않는다.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와 재원을 끌어내지 못하는 국가 계획은 공염불에 그칠 우려가 높은 것이다.

다음으로,이번 비전의 중심 목표인 복지의 달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할 일과 민간이 할 일을 합리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우선 민간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이를 통해 다양한 일자리와 새로운 사업기회를 창출함으로써 복지 수요의 상당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가족 구성원을 통해 한 가구의 복지 수요가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자리와 사업기회의 창출이 '지속적 복지(sustained welfare)'의 지름길인 것이다.

정부는 민간 부문의 투자 활성화로 해결될 수 없는 복지 수요에 초점을 맞추는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한다.

또한 복지에 대한 지출도 복지 투자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오늘의 복지 투자는 내일의 우리 사회가 부담할 더 큰 복지 부담을 사전에 덜어주는 투자라는 인식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특히 이번 비전처럼 민간과 정부의 역할 분담과 재원 마련에 대한 고려가 없는 복지 지출은 미래 세대의 소득을 미리 앞당겨 사용하는 '가불(假拂) 복지'에 그칠 우려가 높고,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전가되는 것이다.

복지 재원도 국민의 부담인 만큼 최대한 가치있게 쓰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일정한 수준의 복지 달성을 위해 쉽고 인기 영합적(迎合的)인 방법보다는 어렵지만 본질적인 접근방법을 택해야 한다.

재원 마련 방안이 없이 복지성 지원을 확대하는 장밋빛 계획을 내놓기 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복지 장애 요인의 제거에 먼저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가계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노후 재원 형성을 가로막는 교육비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교육 평준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교원 평가를 강화하면서 교육의 질적 향상에 장애가 되는 교원단체 등의 행동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제는 가진 계층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뒤로 하고,민간 경제의 활성화를 통하여 고용을 촉진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영업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러한 경제 활성화와 고소득 자영업자 등에 대한 엄정한 조세 집행을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민간을 통해 이룰 수 없는 복지 수요를 정부가 감당해 나가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부산물(副産物)이 곧 복지인 것이다.

장밋빛 계획을 꼭 만들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대꾸하기 보다는 본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복지의 의미와 이를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과 열린 마음이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