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輝昌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논문표절 사건으로 교육부총리가 낙마했다.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논문표절에 관련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논문표절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한국학계의 투명성(透明性)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표절의 정의를 너무 확대 해석하면 교수들의 연구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비난하는 측과 해명하는 측 모두에게 논문표절의 한계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이 없었다.

논문표절의 영어단어인 plagiarism은 원래 납치자(拉致者) 또는 해적(海賊)을 의미하며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글을 훔쳐오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해적과는 달리 남의 글을 가져 오되 원전을 밝히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

여기서 남의 글이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가 쓴 다른 글도 포함된다.

따라서 자신의 논문이라 하더라도 거의 같은 논문을 원전을 밝히지 않고 서로 다른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은 해적행위로서 불법이다.

그렇다면 확실히 원전을 밝히면서 남의 글만 잘 모아 놓은 논문은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논문은 불법은 아니지만 논문으로서 가치가 없다.

학술적 논문이란 기존의 학문적 프런티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기존의 프런티어를 잘 설명하면서 문제점을 찾아야 하는데,이때 다른 글들을 많이 인용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논문에는 모두 자기 아이디어만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글은 수필은 될 수 있어도 학문적 연구논문은 아니다.

논문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지식과 논문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지식의 차이점이 의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논문이란 '기존지식+알파'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이 알파가 논문의 공헌도이다.

논문이 학술지에 투고되면 2∼3명의 위원이 이 알파를 심사하여 게재(揭載) 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서 논문 투고자나 심사자 모두 상대방을 알지 못하고 오직 편집위원장만이 교통정리를 하는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치게 된다.

교수의 연구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연구보고서나 학술회의 발표 등 '학문적 알파'를 발전시키는 초기단계이다.

둘째는 이러한 글을 잘 다듬어서 엄격한 심사과정을 요구하는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렇게 검증된 논문을 책으로 다시 출간하는 것이다.

이 모두 표절이 아니다.

특히 셋째 단계에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해도 문제가 없다.

물론 원전은 밝혀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업적은 학술지 게재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학술지에는 중복게재가 안되지만 다른 종류의 출판물에는 중복게재가 가능하다.

박사학위 논문도 꽤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치지만 상호 익명(匿名)으로 심사하는 학술지의 심사과정에는 못 미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박사학위 논문을 참고문헌에 인용할 때 반드시 '출판되지 않은 논문(unpublished dissertation)'이라고 기술한다.

따라서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학술지에 심사를 거쳐 게재하는 것은 표절이 아니다.

논문 공저자의 자격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자.논문의 공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론을 제공해야 한다.

특별한 실험결과가 아닌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면 공저자로서의 자격이 되기 힘들다.

따라서 객관적 자료는 그 제공자를 공저자로 하지 않고 논문에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자료의 원전을 밝혀야 하고 경우에 따라 허락도 필요하다.

우리가 과거 선진국에 많이 뒤처져 있었을 때는 빨리빨리 지식을 전파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표절시비가 별로 없었다.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는 '학문적 알파'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이를 발전시키는 학문적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교육부총리 사건이 논문의 가치 및 표절의 한계를 제대로 짚어보는 학문발전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