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상권 대해부'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서울 지역 28곳의 상권을 들여다 보았더니 대체로 자영업자들의 얼굴은 울상이다.

일부 벼랑에 내몰린 이들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 비상수단을 쓰고 있다.

야간에 부인이 대리운전에 나서 생활비를 벌거나 종업원을 내보내고 점주·주방장·배달원 등 1인3역을 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반면 성인게임장은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영등포역 앞에는 무려 40여개의 게임장이 난립,상권 전체를 포위한 형국이다.

여기 뿐만이 아니다.

도심,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빠른 속도로 확산,자영업 시장의 빅히트 업종으로 떠올랐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부 게임장 업주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다닌다.

잘 버는 티를 내면 "뜯기는 데가 늘어난다"는 이유에서다.

성인게임장의 자양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장기 불황이고,둘째는 건물주와 임차인의 갈등이다.

수년간의 불경기로 월세 내기가 벅찬 임차인들이 건물주에게 월세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이 불거진다.

그러던 어느날 중개업소에서 연락이 오고 건물주는 임차인을 전격적으로 내보낸다.

후속 점포 1순위는 당연히 게임장이다.

월 임대료를 파격적으로 올려주겠다는 데는 게임장밖에 없는 까닭이다.

게임장 업주도 권리금이 없어서 좋다.

게임장은 이처럼 건물주와 게임장 업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날개를 달고 있다.

성인게임장은 불황의 바로미터 격이다.

의류,화장품,패스트푸드점을 축으로 하는 대로변의 판매업종 매출이 급감하면서 이 자리를 게임장들이 메워나가고 있다.

지금도 장사가 잘 되는 건대역 상권 대로변의 경우 게임장이 한 곳도 침투하지 못했다.

'게임장은 불황을 먹고산다'는 속설은 여기서도 입증된다.

이런 게임장 업주들도 건물 주인들을 가장 부러워한다.

국내 최고 황금상권인 강남역 일대에서 최근 300여평짜리 점포가 매물로 나왔다.

내달 임대차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이 점포를 건물주는 보증금 50억원,월 임대료 3억원에 내놓았다.

이 건물주는 강남역과 명동에 다수의 건물을 소유,매달 임대료 수입만 최소한 20억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부동산업계에선 추정한다.

연간 240억원이 넘는 셈이다.

이 사람이 세금을 제대로 내는지,몇 명을 먹여살리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이 건물주인과 비슷한 순익을 올리는 유통업체의 경제적 효과를 비교해보자.대형마트(할인점)의 순익은 보통 매출 대비 2%이므로 역산하면 연간 매출은 1조2000억원이다.

이 정도 매출을 올리려면 점포수가 20개는 돼야 하며,점포당 500여명이 필요하다고 볼 때 적어도 1만여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기업의 존재가치가 뚜렷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봉'이 되고 있다.

이 선봉에 정치·행정권과 시민단체가 서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투명하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사각지대'에서 불로소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없는지부터 살펴볼 일이다.

이런 일을 제쳐놓고 기업을 손보는 데 열중하다 보면 10년쯤 뒤 우리 자녀들에겐 '외국관광객 발 마사지'외에 남아있는 일자리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곧 닥쳐올 현실이란 게 더 끔찍하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