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고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겠다는 삼성의 결정을 보는 마음은 답답하다. 국민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결단이지만,실상 국민정서로 포장된 우리 사회의 반(反)삼성 기류가 결국 삼성에 무장해제를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기업도 사회 속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하나의 생태적 존재이고 보면,민심을 거슬러 지탱할 수 없고 한국 대표기업 삼성의 사회적 책임 또한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주주에 대한 책임을 넘어 사회 전체에 대한 공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경영의 주된 흐름이라는 점에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나눔경영을 실천하는 것이 기업의 최고선 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기업에 책임을 요구할 수 있을까. 불법 대선자금,편법적 경영권 상속,'X파일'파문 등 도덕적 결함이 반삼성 정서의 요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 커져버린 삼성에 대한 쓸데없는 두려움이 낳은 '삼성공화국론'이 그 정서를 더욱 부추긴데 이르면,도대체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부터 갖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진부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공헌 모델로 록펠러를 얘기하지만,기업인으로서의 록펠러는 무자비한 기업사냥꾼이자 냉혹한 독점 석유재벌이었던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선사업가로의 변신도 독점의 횡포를 일삼다 반독점법 위반으로 미국 연방최고재판소로부터 해산명령을 받고 해체된 뒤의 일이었다. 엄청난 부(富)를 창출하고 있는 다른 초일류 기업의 경영은 또 어떤가. 햄버거 왕국 맥도날드가 싸구려 노동자만 골라 쓴다고 하여 '싼 임금에 혹사당하는 시간급 노동자'라는 뜻의 '맥잡'(McJob)이라는 말이 생기고,동남아의 저임금 생산에 의존하는 '나이키 경영'(Nike Economy)이란 용어도 있다. 이익이 나는 곳이라면 지옥에라도 찾아가고 악(惡)과 타협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자 논리라는 얘기다. 삼성 또한 많은 흠이 있고 경영방식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삼성은 무한경쟁의 시장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경쟁조건을 유리하게 이끌어 세계 일등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우리 기업사(企業史)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삼성이 앞으로도 우리 경제를 견인해야 할 희망이고 미래인 이유다. 나라 밖의 많은 경쟁기업들은 벌써부터 '타도 삼성'의 기치를 올리고 압박의 고삐를 죄고 있는데,갈 길 바쁜 삼성이 여전히 나라 안 반삼성 정서의 덫에 걸려 있는 모습은 그래서 안타깝다. 솔직히 끊임없이 지배구조에 대해 시비를 걸면서 반삼성의 선봉에 서있는 이땅의 이상론자(理想論者)들은 요즘 정체조차 불분명한 국제투기자본이 한국의 우량기업들을 어떻게 사냥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볼 일이다. 당장 소버린이 SK를 어떤 식으로 위협했고 챙겨간 이득은 얼마인가. 지금 KT&G가 왜 아이칸의 공격을 받고 있으며 또 얼마나 큰 국부(國富)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기업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명분이 아무리 좋아도,모호한 국민정서를 잣대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경쟁에서 이기는 기업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잭 웰치는 말했다. 경쟁에서 지고 나면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기업조차 없어지게 된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