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협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keykim@kitech.re.kr > 세모에 들려온 두 가지 소식에 덜컥 심장부터 내려앉았다. 한 친구가 위암 수술을 받은 데 이어 다른 한 친구가 최근 대장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해가 바뀌면 내 나이 예순.공자는 60세에 '귀가 순해졌다'는데,친구들의 병환 소식에 이리도 귀가 얇아지는 걸 보면 이순(耳順)의 경지는 아직도 멀었나 보다. 이순은커녕 아홉 수의 재앙인가 싶은 것이,자꾸 마음까지 얇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어쨌거나 함께 성장기를 통과해 온 동갑 친구들의 병환은 내 일처럼 쓰리고 아프다. 위암 수술을 받은 J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스펙트럼' 활동을 같이 해 왔을 만큼 막역한 사이다. 회원 7명으로 시작해 '스펙트럼'이라고 이름 지었던 그 동아리는 두 달에 한 번씩 5년 동안 회지를 발간했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다. 내 고교 시절은 대학 입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고 음악 감상을 하고 독서 토론회를 했던 그 시절에는 분명 낭만이 있었다. 한 번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느냐, 시대가 영웅을 만드느냐'를 놓고 오후 내내 열띤 토론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렇게 설익은 생각들을 산문이나 시,기행문 형식에 담아 우리가 직접 '가리방'을 긁어 등사기로 밀던 때가 오늘 불쑥 그리워진다. 대장암 진단을 받은 K와는 청주중학교에서 처음 만나 고등학교,대학교를 같이 다녔다. '삼락회'를 만들어 최근까지도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왔을 만큼 절친한 친구다. 그런데 K의 말을 들어 보니,60이 다 되도록 한 번도 대장암 검진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대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에 의하면 암 예방은 무엇보다 정기 검진이 중요하다. 간혹 짧고 굵게 살겠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들이 있는데,이제는 '짧게 사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중병에 걸리더라도 발달된 의학 기술이 수명을 연장시켜주기 때문인데,주의할 것은 이 경우 남은 생을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게 싫다면 평소 건강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 유태우 교수의 조언이다. 평균 수명의 연장은 이제 '장수'의 개념까지 바꾸고 있다. 오래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2050년께에 이르면 최대 수명이 150세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하니,'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만도 아닌 것이다. 친구들 소식에 울적해진 심사도 달랠 겸 1박2일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겨울 바닷가를 거닐며 을유년 한 해를 되짚어 보고,또 제2의 인생을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지 계획도 좀 세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