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명지대 무역학과 교수 > 2000년 미국의 대통령선거 때의 일이다. 부시와 고어 후보가 경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 한번은 고어 후보의 주식투자 경력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고어 후보가 주식투자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언론들은 주식투자도 한번 안 해 본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고 하냐면서 질책어린 비판을 가했다. 주식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물경제의 흐름에 대한 감각과 투자철학 정립의 경험 부재에 대한 여론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대통령직은 주식 투자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업을 경영해보고 성공시켜 본 경험이 있는 부시 후보에게 돌아갔다. 적어도 부의 축적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실용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고위직의 부의 축적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만큼 충분한 해명과 이성적 대화가 오가야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언성을 높이기 전에 제대로 된 검증이 뒤따라야 하며,특히 직무와 관련한 불법과 합법 혹은 편법 여부에 대한 차분한 판단이 필요하다. 도덕적으로 매장하듯 그만두게 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이헌재 부총리의 낙마를 지켜보는 마음은 너무도 씁쓸하다. 그만큼 역량있고 소신있는 인사를 찾기는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의 취임 초기 일부 언론은 당신같이 코드 안맞는 사람이 왜 거기 가 있느냐며 하루바삐 그만두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경제가 힘들어지면 개혁세력에 대한 성과평가가 나쁘게 나오면서 목소리가 스스로 낮아질텐데 당신 같은 관료가 경제를 살리면 개혁세력의 목소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 아니냐는 역설적 지적도 비등했었다. 그러나 그가 자리를 지키면서 정책을 밀어붙인 것은 그 나름대로의 실용주의적 시장주의 소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혁도 필요하지만 시장을 중시하면서 예측가능한 정책을 통해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줄이는 안정적 경제운용이 중요하다는 그의 소신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아파트 분양원가공개를 비판할 수 있게 했고,골프장 2백개 건설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게 했고,1가구 3주택 세금중과를 반대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의 실용노선 덕분에 드디어 경제가 조금씩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그는 토지매입이 문제가 돼 낙마를 하게 됐다. 청와대의 노력도 '부동산투기'라는 다섯 글자를 앞세운 개혁세력의 압력 앞에서는 별 힘이 못된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취임초기 그의 거취를 지적한 일부 언론의 지적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해명 한번 못한 채 스스로 그만두는 모습을 보면서 씁쓰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상황은 관료들이 소신껏 일하기가 참으로 힘들게 돼 있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지나친 정책간섭을 하고 있고 각종 위원회들은 관료들을 흔들어대고 있다. 이유는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관료들은 정책 하나 추진하려면 시민단체에 휘둘리고 위원회에 둘러싸인 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결과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말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정책의 안정성과 일관성이다. 조금 자리가 잡히나 했더니 수장이 바뀌고 주가가 요동을 치고 미래를 불안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마이너스 요인이다. 국정에 있어서 개혁과 안정이 모두 요구된다고 할 때 경제 분야는 적어도 안정과 실용 위주로 가야한다. 이제 다음 부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내각을 다독이고 각종 위원회의 시시콜콜한 요구에는 뚝심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중심잡힌 인물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앞으로 추진돼야 할 일자리 40만개 창출,성장률 5% 달성,신용불량자 대책,세계적 투자은행 육성,벤처기업 활성화 등 미완의 정책들을 실용주의적 시장주의 마인드를 가지고 밀어붙여서 경제회복이 장기적으로 더욱 가속화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