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 논설위원 > '썩는다'는 뜻의 부패(腐敗)가 경제 행위로서는 어떻게 풀이될까. 세계은행은 부패를 '사적 이득을 위한 공권력의 남용'으로 정의했고,어떤 학자는 '공무원이 사적 이득을 위해 정부 자산을 팔아먹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부패방지법이 규정한 부패의 개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요컨대 부패는 공권력과 돈을 맞바꾸는 형태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형 사고나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돈과 권력이 얽힌 부패의 연결구조가 드러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올들어 '반(反)부패'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시민단체의 반부패투명사회협약 제안에 이어 재계가 투명경영 실천을 다짐하고,대통령도 부패청산의 의지를 강조하면서 정치권과 사회전반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정치·경제·행정·시민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구체적인 부패척결 방안을 내놓고 이를 실천에 옮기자는 것이 반부패협약의 취지다. 범국민적인 부패추방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이야말로 아무리 서둘러도 빠르다고 할 수 없다. 사실 반부패는 식상한 구호다. 역대 어느 정권도 부패척결을 외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치소를 들락거리는 정치인과 공직자는 끊이지 않았다.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부패순위는 1백46개국 중 47위,OECD 30개국 중 23위로 대만,말레이시아 등에도 뒤졌다. 그동안의 줄기찬 부패추방 노력의 결과라고 하기에는 정말 창피스럽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다. 부패는 왜 생기는가. 그것은 투자수익률이 아주 높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걸리지만 않는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돈을 주고 받는 사람 모두가 크게 이득을 보는 최고의 수익모델인 것이다. 부패는 또 '부패=규제(권한+독점)-책임'의 공식으로도 설명된다. 시장경제에서 정부관료의 권한과 재량권이 많을수록,자유경쟁을 저해하는 공급자의 독점력이 클수록,반면 정부와 관료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행정투명성이 미흡할수록 부패가 심해진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패를 줄일 수 있는 길은 쉽다. 우선 부패의 수익모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병역비리를 없애려면 돈을 주고 받은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적발과 책임추궁으로 투자리스크를 최대로 높여 아예 군대를 갔다 오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 예외없는 사정(司正)이 유효한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의 부패추방운동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드러난 부패'에 대한 사정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이 크다. '부패공식'은 그런 점에서 반부패의 해법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한마디로 정부관료의 권한과 재량권 축소를 위해 각종 규제부터 없앰으로써 부패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경쟁을 저해하는 독점도 사실은 정부규제의 일부이고,규제철폐와 함께 절차를 단순화하면 행정시스템이 투명해지면서 저절로 책임행정이 강화된다. 규제의 최소화는 무엇보다 정부의 최소화를 전제로 한다. 구체적으로 관료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관료들은 애초부터 자신들의 재량권 확대를 추구하는 규제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정부가 비대해지고 관료의 숫자가 늘면 비례해서 규제도 늘게 마련이다. 그 결과가 부패의 확대재생산이라는 것은 필연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베커는 "국가를 없애야 부패가 사라진다"고까지 주장했다. 반부패선언이나 사회협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새겨볼 만한 말이다.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