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에 가보면 삼지사방에 '모차르트가 ○○한 곳'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태어난 곳,하숙집,식사한 카페,작곡하고 연주한 곳 등.겨우 35년 동안 살았던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의 대표브랜드가 돼 후손들을 먹여 살린다. 화가 고흐는? 생전에 한 점도 팔지 못한 그의 그림은 걸핏하면 경매시장의 최고가를 기록한다. 그가 머무른 프랑스의 아를과 오베르엔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37년의 짧은 일생은 책과 영화로 끝없이 되살아난다. 문화예술인은 이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명브랜드가 됨으로써 연관된 모든 것,심지어 무덤까지 관광상품으로 만든다. 대중문화 시대엔 연예스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찰리 채플린,엘비스 프레슬리,마릴린 먼로의 신화성이 그것이다. 2004년 일본에선 한국배우 배용준이 신화를 만들었다. 일본의 욘사마 붐은 상상을 초월한다. '겨울연가' DVD 음반 책이 불티나고 용평 남이섬 등 촬영지를 줄지어 찾더니 급기야 수천명의 여성들이 공항에 몰려들었다. 입장료가 1천5백엔이나 하는 사진전에 구름떼처럼 모이고 배용준 출연작이라면 무조건 사가는 등 '욘사마'만 붙으면 뭐든 팔린다는 마당이다. 일본에선 욘사마가 한국의 1등 브랜드가 된 셈이다. 삼성 현대 LG라는 브랜드를 세계시장에 알리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과연 얼마일까를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미국이 왜 할리우드 영화의 해외 판매를 국가적으로 지원하는지,각국이 왜 문화콘텐츠 전쟁에 물불을 안가리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임도 물론이다. 욘사마를 키운 건 다름 아닌 '겨울연가'라는 콘텐츠다. 일본여성들을 사로잡은 건 드라마 속 강준상과 이민형(준상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얼굴,뭘 입어도 멋진 몸매,수학천재이면서 피아노를 치는 멋,그윽한 눈으로 목걸이를 선물하는 다정함,모든 게 완벽하지만 아버지를 모르는 아픈 사연의 인물. 단호하지만 사랑하는 이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드라마 속 캐릭터는 누추한 일상에 매몰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잊었던 여고시절에 대한 향수와 완전한 사랑에 대한 꿈을 일깨운다. 일본 여성들이 매료된 것도 바로 그런 캐릭터일 터이다. 그러나 모든 명품이 그렇듯 뛰어난 문화콘텐츠 역시 철저한 기획과 제작,꼼꼼한 마케팅 등 수많은 요소의 단단한 결합에 기초하는 것이지 결코 우연히 혹은 누군가 한사람에 의해 이뤄지지 않는다. '겨울연가'의 성공 역시 고교시절 첫사랑이라는 주제와 배용준을 내세운 부드럽고 솔직한 남성상의 창출,스키장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 등 세심한 제작과 작가 연출자 등 스태프와 배용준을 비롯한 출연자들의 공동노력이 만든 결과다. 욘사마 붐은 한동안 주춤해진 듯했던 한류 바람의 지속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욘사마 열풍이 아니라도 한국은 지금 영상물 전성시대를 맞았다. 영화 1편의 관객이 1천만명을 넘고,칸과 베니스 등 세계 유명 영화제 수상이 이어지고 수출도 급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1세기 문화콘텐츠 강국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흥분하기엔 이르다. 한국영화 붐은 비슷비슷한 주제가 양산되면서 벌써 주춤하고,욘사마 열풍은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숨 돌릴 틈이 생긴 일본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불러일으킨 팬덤현상일 수 있다. 호기심에서 비롯된 유행은 한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욘사마 바람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지속적이고 힘찬 한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겨울연가'와 다른,재미있고 철학도 있는 탄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시장은 모작에 냉혹하며 따라서 살아남는 건 실로 독창적인 작품 뿐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