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갑 아경산업 대표 akyung@kornet.net > 해외 출장으로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그 도시의 유수한 대학을 찾아보는 것이 나만의 여행 습관이 됐다. 지난주 미국 덴버를 방문했을 때도 로키산맥의 볼더에 위치한 콜로라도대학 캠퍼스를 거닐어 보았다. 그러던 중 중앙도서관 한 켠에 있는 동아시아 서고(書庫)를 돌아보니 일본과 중국책들은 많은데 한국 관련 서적은 한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국력에 걸맞은 국제적인 문화 접근이나 수준이 아직 요원함을 느꼈다. 파주 출판도시에는 헤이리 북하우스가 있고 영월에는 영국의 헤이온 같은 고서 책마을까지 등장한 마당에 이젠 아름다운 책 재단이 구성돼 세계 각국의 대학 도서관에 책을 보내는 운동이 전개됐으면 한다. 미국 의회 도서관에는 세계 4백50개 언어권의 책이 소장돼 있는데 그 중 한국 책이 많다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일본인의 집에 있는 책장을 보면 그 집 주인의 직업을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 집주인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전시용 책들이 책장 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내 대학 시절에는 작은 독서모임이 많아 책을 가까이 할 기회가 많았다. 학교 가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나는 이때부터 헌 책방을 돌면서 해방 전후의 책들을 모으는 애서가가 됐으며 많은 희귀본을 수집해 수준 높은 컬렉션 마니아가 될 수 있었다. 군대 복무 중에도 휴가를 나오면 책과의 재회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기뻤다. 완당 김정희 선생이 '인생의 즐거움은 독서가 으뜸이요,그 다음이 여자와 술'이라고 쓴 휘호의 의미를 실감했다. 몇 해 전에는 애지중지하던 내 책들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다. 근 35년간 소장했던 장서를 심사숙고한 끝에 숙명여대와 경찰대로 보냈다. 숙대 도서관측은 자그마한 별도 전시실에 책을 진열하고 내 사진까지 게시해줘 고맙고 한편으론 민망하기도 했다. 경찰대학엔 장차 경찰대 출신들이 오피니언 리더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내 젊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회학 서적 3백50여권을 전달했다. 미국의 경제사상가인 갤브레이스 교수는 "인간의 우둔함이 역사의 진로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꾸준한 독서로 지성을 가꾸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 지도자로 나서게 되면 혼란의 세상이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