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 속의 양치기 소년이 심심풀이로 자주 외치던 '늑대야' 외침이나, 고대 중국 어느 왕이 총희의 기쁨을 보려 여흥삼아 빈번하게 올리던 봉화 올림이 정작 위기가 닥칠 때는 아무 소용없었다. 근대 한국경제 위기론도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장난끼 발동인가? 며칠전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 첫 석달 동안 실질 국내총생산이 작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이는 작년 동기의 3.7%나 마지막 석달(4ㆍ4분기)의 3.9%를 크게 웃도는 성장실적이었다. 이를 이끌어낸 힘은 수출 신장세였다. 수출은 당초 예상을 앞질러가는 반면 수입은 국제원자재 가격 인상 추세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주춤한 결과 경상수지 흑자폭이 크게 벌어져 정부는 올 한해 동안의 전망치를 두배 가량 늘려잡게 됐다. 원유가격이 사상최고치를 연일 경신해도 아직 국내물가 전반에 파급효과는 크지 않고,사우디 등 일부 산유국이 OPEC에 증산요구를 표면화시키고 있다. 한번 자라에 물려 본 사람은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우리 국민이 97년의 외환위기에 놀란 가슴 때문에 조그만 경제애로에 부딪쳐도 곧장 경제위기를 연상하는 버릇이 있는게 아닌가? 그러나 97년형 환란이 조만간 같은 강도로 닥쳐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그때와는 여러가지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환란 이후 금융 및 기업부문에서 이모저모의 구조조정이 진척됐다.두드러지게 다른 것은 1천6백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경상수지의 흑자기조,그런대로 신축적인 환율운영 등이다.최근 증시 널뛰기 틈에 대량의 외자가 유출됐으나 이는 세계 이머징 마켓 전반에 걸친 현상일 뿐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무슨 위기론인가? 문제는 이것이 경제현실의 진면목이 아니라는데 있다. 무엇이 참모습인가? 수출입의 갭(경상수지 흑자 또는 적자)은 국내 투자 저축의 갭과 동전의 앞뒷면이다. 근래 늘어나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 폭은 저축에 상대적인 투자 부진의 폭을 의미한다. 한때의 과소비, 그 결과로 빚어진 신용불량자의 증대, 가계 및 영세 상공인들의 부실 증대 등으로 국내 저축률이 급락하고 있다. 이렇게 떨어지는 저축률에 비교해서도 낮은 국내 투자율이 만들어낸 요술 숫자가 경상수지의 흑자로 나타났다. 공장을 짓거나 새 기계 사들이지 않고, 있는 시설도 가동률이 낮아 원자재 수입이 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1ㆍ4분기에는 민간 소비지출도 작년 동기대비 1.4%나 감소하고 설비 투자도 0.3% 줄어 벌써 4분기 내내 마이너스 행진을 함으로써 경제 측은 내수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수출이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경상수지 흑자는 적자보다 소망스러운 것이라는 단순 논리로 보면 경제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겉치레로 드러난 경제지표 뒤에 숨겨진 진실은 사뭇 냉엄하다. 하루살이는 오늘에 만족하고 내일을 걱정할 까닭이 없다. 내일을 보장하는 것이 투자다. 투자가 활기 있게 되살아나야 일자리 늘고, 소득 불어나고, 분배 몫 다툼이 줄어들어 천하가 안정된다. 투자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투자를 담당하는 주체들이 대접받는 사회여야 하는데 그 정반대가 우리 현실이다. 지난날 기업들이 성장과정에서 정경유착, 엉터리 수출실적 등 비리를 저질렀음을 부인할수 없다.이러한 과거의 원죄들의 무게 때문에 기업인은 곧 범죄자라는 등식이 청소년 교육현장에서,노사협상 테이블에서,정치계의 '개혁' 논의에서 지배하는 한, 민간의 설비투자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기업인들이 학식이 높거나,인격이 출중하거나 행실이 모범적이라서가 아니라,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주고 상품을 개발하고 지구 곳곳에 시장개척의 발걸음을 내딛는다는 바로 국민경제적 기능 때문만이라도 대접해 줄 만하다. 요즘 우리는 이들의 기를 꺾는데 열중하고 있다. 최근 노동부가 제안한 기업의 사회기여 부담금도 같은 발상이다. 노사분규가 두려워, 규제가 지겨워, 세금이 무거워 해외 이전하는 기업더러 앞으로 법인세 더 내라는 얘기에 다름 없다. 물 건너 경쟁국들은 달리는데 우리는 무엇하고 있나, 차라리 하루살이라면 좋겠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