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예측할 때 정상적인 문제해결의 과정을 밟게 된다. 반면 몽상(夢想)적인 생각도 있다. 자신만의 논리에 빠져 성공을 꿈꾸지만 그것으로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는 없다. 목표나 생각이 현실에서 벗어나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미국 심리학자 '올포트'가 구분한 사람들의 두가지 사고형태다. 전자를 직접적 사고,후자를 자폐적 사고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흔히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수록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기 싫어하게 되고 그래서 자폐적 사고에 쉽게 빠져든다. 요즘 나라 경제의 '현실' 진단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환란(換亂) 이후 최악의 위기상황이라고 한다. 다른 쪽에서는 어렵기는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닌데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쪽은 시장의 주체인 기업들이고,다른 쪽은 정책당국인 청와대 재경부 한국은행 등이다. 어느 얘기가 맞는지 도무지 혼란스럽다. 같은 상황에 대한 판단이 이처럼 다를 수 있는지 의문스러운 것은 제쳐놓고 이런 인식의 차이로 문제해결의 시기를 놓쳐 오히려 진짜 위기를 불러오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도 없지 않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문제의 해법은 왜곡되지 않은 눈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때 찾아지고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처방도 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이익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지난해 설비투자는 오히려 8년 전인 95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수많은 중소기업은 부도의 공포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는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고용이 줄어 8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집값이 오르고 물가가 뛰어 서민들이 겪는 고통은 또 어떤가. 신용불량자는 무려 4백만명이다. 규제철폐 및 노사안정을 통한 기업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이 무엇보다 급한 일이라는 명제는 차라리 진부해 보이기까지 한다. 3대 악재라는 중국쇼크,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국제유가 급등도 그렇게 간단히 볼 일인가. 유가를 빼고는 위기요인은 아니라는 게 정책당국의 설명이지만 오히려 우리 경제의 근본적 한계를 부각시킨 큰 문제다. 기름값이 올라 아무리 비싸져도 그걸 사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처지이고,미국 금리가 오르면 더 많은 수익을 좇아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도 마찬가지다. 중국쇼크로 그나마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는데 뾰족한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세계경제가 함께 겪는 일인데도 훨씬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경제의 본질이고 현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감축은 한반도 안보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를 높일 게 뻔하다. 이것이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외국자본의 유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당장 막대한 국방비 증액이 경제에 부담을 주게 된다는 것은 누구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현실들이 '위기'인지,아니면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돼 5%의 성장을 기대해도 좋은 상황'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현실인식이 잘못됐다면,더구나 문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이 그렇다면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고 그 결과는 실패일 뿐이다. 사람들은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자폐적 사고에 안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에 대한 기만행위와 다름없다. 만에 하나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경제현실을 두고 모두 그런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그게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