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주 신용불량자 대책을 내놓았다. 배드뱅크 설립을 통한 부실채권 인수 등 진일보한 방안들이 포함됐다. 여기에 대해 전문가와 언론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총선을 의식한 선심 행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실 비슷한 신용불량자 구제책들이 수 차례 시행되었지만 별반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고 실천안을 내놓았다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신용불량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내수 침체,청년 실업,나아가 사회 범죄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혹자는 부동산 경기마저 꺾이면 정말 헤어날 방법이 없다고 하면서 일본형 버블 붕괴의 가능성까지 이야기한다. 경기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창출돼야만 개인들이 신용불량의 덫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신용불량 해결로 경기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정치 불안,기업 의욕 저하,노사 분규 등이 함께 풀려야 한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부차적인 것이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고 있고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이 신용불량의 근본 문제이다.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정부 조치 여하에 따라 한계선상에 있는 개인들은 범죄자,금치산자,도덕적 해이자 혹은 보통사람으로 나뉘어진다. 신용불량은 도덕성,리스크 성향,소득 능력이 관련되는 복잡하면서 불확실한 사안이다. 신중하게 접근하되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신용불량자는 선의의(?) 소액 채무에서 고의성 대규모 채무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전자는 사회적 합의로 페널티를 면제 내지 경감해줄 수 있지만 후자는 명백한 경제범죄이다. 잘못을 저지른 개인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죄질이 나쁜 경우 재산 몰수,금치산 등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물론 벼랑 끝에 몰려 자살한 사람들을 볼 때 분명히 관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범죄를 눈감아 주어서는 곤란하며,복지 시책을 동원해 가족 생계를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소액 채무자는 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불량이 '법적 카테고리'라면 불신은 '상호관계'이다. 불량의 반대는 건전성,불신의 반대는 신뢰이다. 소액 채무자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을 나쁜 집단으로 못박으면 사회의 지탱이 어려워진다. 구분과 처벌로 문제를 풀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아졌다. 어려움에 처해 있고 탈출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용불량이 아닌 신뢰 회복의 관점에서 해결을 하자. 게임 전략 중에 '맞대응(Tit for Tat)'이라는 것이 있다. 게임 전략의 일종인데 상대를 먼저 신뢰하고 배반을 하면 철저하게 보복한다. 상대가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주고 반성하도록 만든다. 내가 잘못했을 경우에는 일단 인정하고 두 번째 기회를 요구한다. 신뢰를 우선하면 중장기적으로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물론 배반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기본 전제이다. 소액 채무자에게 관용을 베풀되 페널티를 면제하지는 말아야 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관용을 베푸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상환 노력에 따라 원리금 상환을 연기시키는 것이 한 예다.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생계자금 지원,임대주택 제공,공공근로 기회 부여 등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복지 예산과 민간 기부를 관련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재산과 소득이 있는데 채무를 갚지 않거나 상환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채무 상환에 관한 한 당근보다는 채찍이 효과가 있다. 일벌백계를 통해 불법과 불량에 대한 유혹을 차단해야 한다. 향후 신용사회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금융기관들의 과잉 영업,리스크 관리 소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손실 부담은 당연하고 신용평가기법 개선 등 재발 방지책도 요구해야 한다. 개별 기관이 어려움에 처하고 경제에 주는 충격이 예상되더라도 차제에 실패로부터 학습을 해야만 한다. 중장기적으로 소비자 신용교육을 확대하고 신용 회복을 지원하는 전문기관 운영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 serileo@s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