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법개혁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위원회도 생겨 났고, 위원들이 기득권 층을 대변하는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시비도 일고 있다. 필자도 그런 의미에서 소위 기득권 층에 속하는 사람임을 미리 밝힌다. 필자는 1976년에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매년 3백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법률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사법시험 합격자는 매년 60명이었고, 필자는 사법연수원생이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는 핀잔을 받았다. 그러나 법조의 대선배 중 한 분은 애써 일면식도 없는 필자를 찾아서 점심을 사면서 격려해 주셨다. 앞으로 사법개혁을 위해 많은 분야들이 검토되고,새로운 제도들이 제안될 것이다. 사뭇 기대되는 바가 크다. 필자는 사법개혁의 출발점은 시험제도의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제도 개혁을 통해 법학교육을 정상화하고, 정상화 된 법학교육을 통해 인격과 전문 지식을 갖춘,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변호사를 양성할 때 비로소 사법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 모두들 공개적으로 시인하기는 싫어하지만, 우리의 법학교육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소위 고시촌이라고 불리는 서울 신림동에 한번만 가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대학 강의보다는 고시학원 강의가 사법시험 준비생들에게 훨씬 더 인기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고시학원 강의가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대학 강의보다 고시학원 강의를 선호하는 한 대학 강의도 결국 고시학원 강의를 닮아갈 수밖에 없고,결과적으로 정상적인 법학 교육은 요원하게 된다. 최근 사법시험 합격자의 평균 연령이 29세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2년간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3년간 군 복무를 마치면 34∼35세에 비로소 실무를 접하게 된다. 영·미에서는 34∼35세면 7∼10년의 치열한 경쟁을 거친 경력을 가진 변호사로서 가장 왕성하게 일하고 있을 나이다. 우리는 싫든 좋든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다. 경쟁도 지구촌 단위로 이루어진다. 우리 나라의 변호사들도 세계 각국의 변호사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사법시험 준비 기간 동안에는 시험에서 정답을 맞히는 공부를 한다. 그래야 합격할 수 있다. 법학도로서 전문 지식에 관한 열정을 키우다가는 낭패를 당할 뿐이다. 가장 왕성한 지적 성장기를 이렇게 정답을 맞히는 공부를 하면서 허비하고서야 어떻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변호사는 자기 분야의 전문지식과 직업 윤리를 바탕으로 의뢰인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고 분쟁을 예방해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 직업인이다. 전문지식과 직업 윤리는 그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고, 필요한 훈련을 받아야 습득된다. 따라서 전문지식과 직업 윤리를 위한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변호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정한 검증절차(이를 이름하여 사법시험이라고 해도 좋다)를 거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연간 합격자 수를 얼마로 할 것인가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정상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숫자에 구애될 이유가 없다. 결국 변호사가 되기 위한 '정상적인 교육'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정상적인 교육은 그에 필요한 인적 물적 시설을 갖추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앞으로 사법개혁을 논의하면서는 우리 현실에 맞는 인적 물적 시설의 기준을 논의했으면 좋겠다. 예컨대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은 어느 정도이면 적정한가,우리 현실에 필요한 교육 과정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가, 교수진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학생 한 사람당 도서는 어느 정도로 비치해야 하는가 등 여러 가지 문제들에 관해 공감대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성숙되면 법학 교육을 위한 학제에 관해서도 어렵지 않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crwoo@wooy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