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대한 한국군의 추가 파병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파병 여부,규모 등을 놓고 고심하는 가운데 국론은 벌써부터 양분되고 있다. 반전 단체들이 파병 반대시위를 전국적 차원에서 벌이는가 하면,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파병 지지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지난 3월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명분하에 비전투병 파병으로 흩어진 국론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었는데 이번엔 국론분열의 소용돌이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추가 파병을 보는 시각은 크게 명분론과 국익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명분론의 입장에서 볼 때 전투 병력의 추가 파병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 이라크 침공은 분명 침략 전쟁이고,이는 우리 헌법에 명시돼 있는 평화와 자유의 원칙 및 가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간에도 이라크에서는 저강도 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침략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을 보내 피를 흘리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 승인과 축복도 받지 못한 전장터에 전투 병력을 추가 파병할 경우,국내 명분은 물론이고 국제적 명분도 찾기 어렵다고 본다. 그리고 주변 아랍권으로부터의 거부감뿐만 아니라,남북관계 개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추가 파병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국익론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정세 판단에 있어 입장차가 크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이미 끝났고, 추가 파병은 이라크의 치안과 평화유지,그리고 재건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침략전쟁에의 동참이나 미군 점령군 지원이란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추가 파병은 명분에서도 하자가 없을 뿐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도 얻을 것이 많다는 것이다.미시적으로는 전후 복구 참여에 따른 새로운 중동 건설 시장의 개척,10억달러가 넘는 한국 건설업체의 미수금 문제 해결,원유의 안정적 공급 등 경제적 실리가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6자 회담의 활성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미 동맹의 결속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명분론과 국익론 모두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반전의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가시적인 실리를 도외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지나치게 실리를 강조해 국내외적 명분을 간과하는 것도 문제시된다.참여 정부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고 경제적 실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파병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안그래도 참여정부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실정인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명분 약한 추가 파병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을 성 싶다. 명분과 실리를 같이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추가 파병이 미국의 점령을 지원키 위한 것이 아니라,진정으로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 보편외교의 일환으로 이뤄 진다면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세가지 조건이 만족돼야 할 것이다. 첫째,이라크 문제의 유엔화가 선행돼야 한다. 여기서 이라크 문제의 유엔화는 단순히 다국적군 파병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 그쳐서는 안된다. 이라크의 평화 유지와 재건에 있어서 유엔의 역할이 실질적으로 강화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유엔이 미국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도록 그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둘째,미국은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 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점령에서 과도적 이행,그리고 이라크 주권의 완벽한 회복뿐만 아니라 전후 복구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도 파병은 물론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에 참여하기 위한 총체적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이라크 건설에 대한 우리의 참여가 파병에 그쳐선 안된다. 평화와 치안 유지를 위한 파병과 전후 복구를 위한 한국기업의 참여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추가 파병된 한국군이 이라크 재건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을 직접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를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cimoon@yonsei.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