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생명이 최근 국제적 금융기관인 JP모건을 상대로 한 파생금융상품 거래 관련 소송에서 일부승소를 거둠에 따라 당시 사건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외환위기를 촉발하는데 일조했던 당시 사건은 국제경제 정세에 밝지 못한 아마추어(국내 업체)들이 프로(세계적 금융기관)를 상대하려다 빚은 굴욕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 96∼97년 JP모건은 토털리턴스와프(TRS)라는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 한국업체에 팔았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표시 채권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를 만들면서 선물 옵션 스와프 등 레버리지효과가 큰 파생금융상품 기법을 동원했다. 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TRS는 당시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해 안정적이었던 태국 바트화와 연계시켰다. JP모건은 이를 한국업체에 팔면서 중간에 보증기관을 끼우는 치밀함을 보였다. 즉 한남투신 SK증권 LG금속 신세기투신 제일투신 대한생명 등과 거래하면서 보람은행 외환은행 주택은행 등 보증기관과 이중계약을 맺었다. 계약당사자는 JP모건과 한국 보증기관,보증기관과 한국 업체로 이원화돼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JP모건과 한국업체가 직접적인 소송 당사자가 되지 못하도록 했다. JP모건은 특히 서울대를 졸업한 미국 시민권자이며 부친이 13대 국회의원과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낸 지모씨를 통해 TRS 상품을 국내업체에 팔았다. 한국업체들은 태국 바트화와 루피아화의 폭락으로 지금껏 알려진 것만 모두 7건에서 7억5천8백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미 97년 초부터 태국은 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할 방침을 시사해왔다. 그러나 당시 유행병처럼 퍼진 '국제금융거래'의 성사에만 홀린 국내 업체는 이같은 정보에 어두웠다. 루피아화 표시 채권의 수익률은 20%에 달하고 태국 바트화는 안정돼 있다는 말만 믿고 섣불리 투자한데 따른 인과응보다. 한국업체들은 뒤늦게 사기거래라며 소송을 걸었다. 바트화 포지션을 과도하게 보유한 JP모건이 손실을 자신들에게 떠넘기기 위해 환율폭락의 위험성을 고의로 숨겼다는 것. JP모건이 사기꾼인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국내업체들이 국제금융을 한 수 배우기 위해 지불한 수업료는 너무 비쌌다. 정태웅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