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면 대부분이 어릴 적 선생님에 대한 추억거리를 몇개는 갖고 있다. 엄한 선생님 밑에서 회초리 맞아가며 훈육을 받던 일이며 선생님과 어울려 산과 들에서 자연학습을 하던 일,선생님이 가정방문을 나설 때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즐거운 얘기를 주고받던 일들은 아직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즐거운 기분을 자아내곤 한다. 그저 교과서나 가르치는 교사였다기보다는 삶의 방향을 은연중 가리켜준 나침반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당시엔 학부모와 선생님이 별로 접촉할 기회가 없어 무엇보다 '스승의 날'은 각별했다. 생활은 고단했으나 마음만은 훈훈했는데,이 날이 오면 학부모들은 담임선생님께 드리라며 달걀 몇알과 담배 몇갑을 정성스레 싸서 애들 편에 들려 보냈다. 아이들은 막상 선생님 앞에서 수줍어 말 한마디 못한 채 부모님의 '성의'를 전하고는 도망치듯 했다. 비록 하찮은 선물이었지만 이것은 자식을 맡기고도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의 미안한 심정과 학생의 고마운 마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제 스승의 날을 맞았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과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자살사건 등을 둘러싼 교단의 분규 탓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우울했다고 한다. 여느 해처럼 금년 역시 촌지말썽이 생길까봐 많은 학교들이 아예 문을 닫거나 단축수업을 했고 학부모들의 교문 출입은 금지당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순수한 마음이 모여 스승의 날이 만들어졌는데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날로 둔갑한 것이다. 이제는 스승의 날을 학기중이 아닌 학년말이나 방학기간으로 바꾸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교육이 부실해지면서 선생님의 위치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닌 공동체정신을 일깨우고 사회적인 수범을 보여야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오늘의 교육현실은 너무나 거리가 멀다. 우리 아이들이 먼 훗날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여러 '참 스승'을 말할 수 있는 교육풍토가 하루 빨리 조성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