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최대 화제작 '살인의 추억'을 보면 형사 박두만(송강호)이 온종일 목욕탕에 앉아 벗은 사람들을 흘끔거리는 대목이 나온다. 사건현장에 털 한올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 범인이 무모증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남녀 모두 무모증이면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낀다고 하거니와 대머리 또한 보통 고민거리가 아니다. 머리가 훤히 벗겨져 있으면 나이 들어 보이는데다 제아무리 잘생겼어도 좋은 인상을 주긴 힘든 까닭이다. '빛나는' 이마 때문에 맞선에서 퇴짜를 맞거나 가발인 걸 숨기고 결혼했다가 신혼 첫날 벗겨져 소동이 났다는 얘기도 있다. 앞머리가 없으면 외모만 깎이는게 아니라 땀이 곧바로 흘러내리게 된다. 보통사람이야 닦으면 된다지만 2시간이상 달려야 하는 마라톤선수에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마라톤 도중 땀이 눈에 스미는 걸 막기 위해 머리띠를 두르는 등 고생하던 이봉주 선수(33)가 마침내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우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2천4개의 모근을 심었다는 것이다. 대머리는 나이와 유전 남성호르몬이 주원인이지만 근래엔 스트레스와 인스턴트식품 탓인지 갈수록 발생연령이 낮아진다고 한다. 초기엔 미녹시딜이나 프로페시아 등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지만 심해지면 모발이식 외엔 별 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모발이식이 가능해진 건 1950년 미국의 피부과 의사 바스키가 "털은 처음 났던 부위의 성질을 간직한다"는 걸 밝혀낸 덕이다. 머리 뒤쪽 모낭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덜 받아 앞으로 옮겨도 잘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원용하는 셈이다. 한번에 이식 가능한 모근 수(1천5백∼2천개)와 밀도(1㎠당 60모) 모두 한계가 있지만 대부분 효과를 볼 수 있어 적지 않은 비용(2백50만∼5백만원)에도 불구하고 수술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식한 머리카락은 한달쯤 지나 빠졌다가 석달 뒤 다시 자라 6개월쯤 되면 자연스러워진다고 한다.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선 한결 젊어진데다 땀 때문에 신경쓰지 않고 잘 달려 우승하는 이봉주 선수를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